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289) 참 이상한 선물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5-06-09 수정일 2015-06-09 발행일 2015-06-14 제 2948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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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지방에 있는 순교지를 순례할 때 일입니다. 수도원에서 아침 전례와 식사를 한 후 순례를 떠났습니다. 오전에 도착한 후 30분 정도를 걸으니 아직 잘 알려지지 않는 순례 장소가 나타났습니다. 그곳에서 한참을 머문 후에 다시 걸어 내려와 다음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그렇게 순례를 하고 근처 식당에 들러 정식 하나를 시켜 먹는데, 그 집이 신자 집이었습니다. 그리고 주인장은 제가 천주교 신자인 것을 금세 알아챘습니다. 왜냐하면 식사 전 기도를 정성스럽게 했나 봅니다.

“신자예요?”

“예, 신자예요. 여기 이 지역 순례 왔어요.”

“아, 그래요? 그럼 순교자 박상근 복자님의 묘지가 있는 마원 성지는 가 보셨어요? 우리 신자들이 거기를 정성껏 단장했어요.”

“아, 예. 제가 점심 먹고 서울에 다시 가야하는데.”

“여기서 가까워요. 조금만 가면 돼요. 금방이에요. 점심 먹고 꼭 가보세요.”

“가까워요?”

“그럼요. 금방이에요. 꼭 가봐야 해요. 거기가 얼마나 좋은지, 꼭 가보세요.”

식당 주인의 정성 어린 강압(?)에 점심 식사 후 예정에도 없는 마원 성지를 가게 되었습니다. 식당 주인이 알려준 대로 길을 갔더니, ‘마원 성지’라는 이정표가 나왔습니다. 주차장을 지나 마원 성지로 올라가는데, 날씨도 좋고 마음도 좋았습니다. 성지에 도착하니, 식당 주인의 말대로 너무나도 잘 꾸며진 성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지역 신자분들이 정성껏 가꾼 성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요일 오후, 너무나도 좋은 날씨에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어느 부부가 십자가의 길을 바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14처 앞에서 남편은 십자가의 길을 마무리하자고 하는데, 아내는 13처에서 바라보이는 그 지역 풍경을 사진에 담으려 했습니다. 천진난만한 표정의 남편과 고운 미소의 아내를 보면서 순례를 함께 다닐 정도로 참 좋은 부부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내가 먼저 그 두 분에게 다가가 인사를 드렸고, 내가 ‘수사 신부’라는 것을 듣고 두 분 역시 너무도 반갑게 인사를 한 후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내가 먼저 그분들에게 ‘순례 다니는 부부를 보면, 참으로 행복해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분들은 부부로서 인생의 모진 풍파를 헤쳐 나온 후 이제야 비로소 순례를 통해서 서로 마음을 잡아가는 중이라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전에 부부 상담을 잠깐 했던 가닥이 있어 부부 갈등을 영적으로 풀어가는 문제에 대해서 짧지만 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부부는 저에게 ‘하느님이 자신들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며, 특히 저를 ‘하느님이 보내준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기쁜 얼굴로 자신들의 문제를 새롭게 보게 되었다는 말을 하면서 그 부부는 ‘앞으로 더 잘 행복하게 살겠다’는 말과 함께 헤어졌습니다.

부부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제의 모습에 ‘하느님의 선물’로 생각하는 그분들의 순수함. 하지만 거기를 갈 계획이 없었다가, 식당 주인의 정성 어린 강압(?)에 못 이겨 갔기 때문에 ‘하느님 선물’의 몫은 식당 주인의 성지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은 때론 참 이상한 방법으로 선물을 여기저기, 나누어 주심을 그날, 몸소 체험했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