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294) 한 사람을 위한 사랑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5-07-14 수정일 2015-07-14 발행일 2015-07-19 제 2953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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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심포지엄과 관련하여 아시아 지역의 어느 나라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나는 그 나라 언어를 전혀 못하기 때문에 당연히 통역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수도회 총장 신부님께서 그 나라에서 20년 정도를 선교사로 살고 계신 어느 신부님을 섭외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3박 4일 동안 그 신부님의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출장을 떠난 날, 그 나라 공항에 입국했을 때부터 신부님은 공항에 마중 나와 주셨고, 다시 출국할 때까지 저를 사랑으로 배웅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곳 공항에 입국하던 날, 놀랍게도 신학교에서 친하게 지냈던 선배 신부님 한 분이 입국장에 같이 나와 계셨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 그 신부님은 두 나라에 선교 갔다가 다시 이 나라에 선교왔으며, 지금 거의 7년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암튼 공항에 도착해서부터 내가 아는 신부님을 만나게 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고, 처음 뵙는 통역 신부님과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공항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한 후에, 신부님들은 내가 묵을 숙소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차를 타고 1시간30분 정도 갔는데, 우리는 차 안에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특히 내가 방문한 나라뿐 아니라 그 신부님들이 선교하시는 지역에서 겪는 여러 가지 이야기도 들으면서 많이 놀랐습니다. 선교가 그렇게 힘든 것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고, 그 힘든 선교를 즐겁게 하는 신부님들 모습에 자연히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은 이곳에서 행복한 선교사요, 신앙인으로 살고 있다며 해맑은 미소를 보여주시는 신부님들의 모습에는 깊은 평화가 깃들어 있었습니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에 신부님들은 요즘 제철 과일이 싸다며 시장에 들러 과일을 넉넉하게 샀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2,000원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과일을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나라에 산다는 것, 그건 하나 부러웠습니다. 하지만 그 밖의 모든 삶 이야기는 듣기는 좋지만 살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내가 묵을 숙소는 그 지역의 선교 센터였습니다. 잠잘 방을 배정받고, 통역해 주시는 신부님 방에 세 사람은 모여 좀 전에 시장에서 산 과일을 먹으면서 다시금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밤 10시가 넘었습니다. 그러자 내가 아는 신부님이 먼저 일어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더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

“에이 신부님, 왜 이리 빨리 가셔요?”

“지금 이 시간 기차를 타고 가야 내일 본당 새벽 미사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지금 가서 미사도 준비하고, 강론도 써야 해요.”

그래서 나는 다시 물었습니다.

“와, 신부님 본당은 다른 곳보다 운영은 잘 돼나봐요. 얼마나 많은 신자분들이 오시는데요?”

“음, 한 분. 무슨 일 있으면 안 오실 수 있고. 하지만 누가 오든 안 오든 간에, 약속한 시간에 내가 미사를 드리고 있으면 간혹 구경 오는 일반인도 있고. 그게 선교 지역에서 내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이죠. 허허”

그리고 신부님은 시간 맞춰 기차역으로 떠났습니다. 나는 떠나가는 한국인 선교사 신부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많은 것을 묵상했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