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323) 세상을 바꾸는 힘, 어머니 (2)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6-02-23 수정일 2016-02-23 발행일 2016-02-28 제 2983호 17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갑자가 맹장 부위가 아파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딸. 그 딸을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가족들을 데리고 눈이 펑펑 오는 길을 나선 어머니. 경운기를 운전하는 아들. 경운기 뒷좌석에 앉은 남편과 남편의 동생 부부. 그리고 이불에 누운 딸의 얼굴이 시릴까봐 자신의 손을 비빈 후 거기서 나오는 온기를 딸의 얼굴에다 대면서, ‘괜찮다, 괜찮다’를 속삭이는 어머니 심정.

눈은 점점 더 하염없이 내리고, 날씨마저 더 추워지면서 주변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눈 오는 소리만 고즈넉하게 들리는 고요한 밤, 오로지 경운기 달리는 소리만 밤하늘에 울리는 시골 길. 무언가를 잠시 회상한 듯 자매님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그때 저는 경운기 뒷자리에 깔아 놓은 요와 이불 속에서 몸을 옆으로 한 후, 배를 움켜쥐고, 식은땀만 흘리면서 누워있었어요. 너무 아파서 아프다는 말도 못했어요. 그리고 한참을 달리던 경운기가 갑자기 어디선가 멈추는 듯 했어요. 또한 그 후에 알았어요, 경운기 뒷좌석에는 포대 자루에 모래를 실어 놓았다는 사실을. 우리 일행은 함박눈이 왔다고, 택시들이 위험하다고 오지 않는 그 언덕 길 앞에 도착한 거예요. 순간 아빠와 엄마. 그리고 작은 아빠와 작은 엄마는 삽을 들고 내리더니, 경운기가 언덕길을 오를 수 있도록 눈들을 치웠어요. 그런 다음 경운기가 다시 언덕 내리막길을 조심해서 내려 갈 수 있도록 눈길 위에다가 모래를 뿌렸다고 합니다. 이 상황은 퇴원 후에 큰 오빠에게서 들었어요. 큰 오빠 말로는 그 날 엄마가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눈을 치우고, 길 위에 모래를 뿌리더래요. 아빠랑, 작은 아빠, 작은 엄마보다 몇 배로 쉼 없이 삽질을 했대요. 아마 엄마는 나를 살리려는 마음만큼이나, 운전하는 큰 아들도 행여나 어찌될까 걱정을 했던 거예요. 그래서 큰 오빠가 눈이 오는 오르막 길, 내리막길에서 경운기를 조심해서 운전할 수 있도록 어머니는 필사적으로 눈을 치우고, 눈 길 위에 모래를 뿌린 거죠.”

나는 자매님의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머리로 이야기 속에 들어가 그 날의 배경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함박눈 오는 날. 경운기. 그 뒷좌석에 이불 속에 배를 움켜쥐고 있는 자매님. 그리고 오르막, 내리막길에 눈을 쓸고 모래를 뿌리는 가족들. 딸을, 조카를 살리겠다는 가족의 모습에 그냥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가족! 그리고 기적을 일으키는 가족의 사랑 앞에 내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자매님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보니 병원에 다 도착한 거예요.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나는 응급실로 옮겨졌어요. 그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로는 조금만 늦었어도 제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거래요. 맹장이 터지면…. 휴! 아빠랑 오빠는 병원에 접수를 했고, 작은 아빠, 작은 엄마는 의자에 앉아 있었고, 지칠 만도 한데 우리 엄마는 이를 꽉 문 채, 간호사들이 나에게 환자복을 입히고 링거를 꽃을 때에도 옆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서있었어요. 그 후 응급으로 맹장 수술을 하러 수술실에 들어가는데, 글쎄…. 엄마가 수술실에 따라 들어가려는 거예요. 그래서 간호사들이 엄마에게 ‘여기는 들어오시면 안 된다’고 하니까, 그제야 엄마는 병원 수술실 앞에 철퍼덕 주저앉아 서럽게 우셨어요. ‘안돼요, 안 돼. 내 딸 수술실에 혼자 못 보내요. 절대로 못 보내. 내가 옆에 있어야 해요. 안돼요. 우리 딸 혼자 저기를 절대 못 보내요. 이 딸이 어떤 딸인데!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내 딸인데. 절대로, 절대로 수술실을 혼자 못 보내요.’ 그리고 엄마는 수술실로 들어가려는 나에게 오시더니, 손을 꼭 잡은 채 한사코 물러서지 않은 채, 수술실에 함께 들어가겠다고 완강하게 버틴 거예요. 아마도 그때 엄마는 수술실이라는 곳을 잘못하면 내가 죽어서 나올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다음 편에 계속)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