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327) 첫사랑, 신학생 (2)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6-03-23 11:33:00 수정일 2016-03-23 11:33:00 발행일 2016-03-27 제 2987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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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님은 오래전 신학생을 짝사랑했던 이야기가 싫지는 않은지 해맑게 웃으셨고, 남편은 그런 아내의 순수한 마음이 좋았는지 나에게 그 이야기를 먼저 들려주었습니다.

“우리 집사람은 처녀 때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대요. 그리고 대학 졸업 후 세례를 받았나 봐요. 그 후 사회복지사로 어느 시설에 근무하는데, 그때 첫사랑인 신학생을 만났대요. 여보, 당신이 이야기 좀 해 줘!”

자매님은 자신 앞에 있는 물을 한잔 마시더니, 남편에게 웃으며,

“당신은 꼭 그렇게 신부님 앞에서 그 이야기를 해야겠어요. 이그, 입도 가벼워라.”

그러자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에이, 어때요, 다 옛날이야기인데. 그래도 신학생이 첫사랑이라 좀 애틋하기는 했겠네요. 사랑이지만, 사랑이라 말할 수 없는, 뭐 그런 거!”

자매님은 자신의 첫사랑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고, 특별한 내용은 없는데 그냥 마음이 짠했습니다. 자매님의 이야기인즉, 그분이 근무하던 사회복지 시설에 여름 방학이 되자 여러 명의 실습생이 봉사 활동을 왔는데, 그중에 부제품을 앞둔 신학생도 있었답니다. 그 신학생은 사목 실습으로 사회복지 시설에 한 달을 지내기로 했는데, 그 시기에 자신도 영세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매님에게 신학생이라는 단어는 더 설레고, 놀랍고, 황홀하게 들리던 단어였던 것입니다.

아무튼 자매님 표현에 의하면, 그 신학생을 처음 보는 순간, 눈에 완전히 콩깍지가 끼이더랍니다. 그래서 시설 안에서 그 신학생과 마주치게 되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만 뛰고! 그리고 힐끗 뒷모습을 바라보면, 그저 멋있게만 보이더랍니다. 그렇게 말도 못하고 가슴앓이만 하고 있던 중에 놀라운 사건이 있었답니다. 3주가 지난 토요일, 오후에 자매님은 근무 끝나고 책상 정리를 하는데 그 신학생이 방문을 두드리며, 사무실에 들어오더랍니다. 그리고는 커피 한 잔 마시고 싶다는 말과 함께!

그날 자매님은 ‘아, 예…’ 하면서 커피를 찾는데, 왜 그리 가슴이 쿵… 쿵… 뛰었는지! 그래서 커피는 제대로 탔는지도 모를 정도였답니다. 그리고 본인은 물 한 잔을 컵에 따라놓고 신학생과 책상을 두고 얼굴을 마주하는데, 자매님 표현으로는 사무실 주변이 한 여름 시원한 바닷가 같았답니다. 그리고 방안 가득 시원한 바람이 자신의 머릿결을 스치는 듯하더랍니다. 그 신학생은 그동안 생활하면서 사회복지에 관련된 궁금증에 대해서 물어 본 것 같은데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더랍니다. 그리고 그 신학생은 지금 자신의 경험하는 앞으로 사제로 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말은 한 것 같은데, 그 말을 했는지 아니면 앞으로 우리 서로 잘 지내자는 말을 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답니다.

그리고 신학생이 가고난 후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앉아 가슴을 진정시킨 후 주말을 황홀하게 보냈습니다. 그 후 일주일 동안 마음 들떠서 지냈는데, 이상한 건 잘해보고 싶은 신학생과 일주일 동안 전혀 마주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궁금해서 봉사자 담당 수녀님에게 물었더니, 그 신학생은 부제서품을 앞두고 피정 일정이 변동되면서 한 달 실습이 3주간 실습으로 바뀌었고, 신학교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날, 토요일…! 신학생과 함께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던 그날이 자매님과 신학생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눈, 자매님 혼자 그리 애틋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첫사랑! 그 감정을 마음속에 잘 담고 살아간다면, 그 감정은 때로는 기도가 되어 바람을 타고 그 사람의 삶에 전해질 것입니다. 어쩌면 첫사랑의 감정을 잘 다루면,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는 사랑 감정에 대한 좋은 방향키 역할도 할 것 같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