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후배 신부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신부님은 성실함의 대명사이자 해맑은 웃음을 달고 사는 분입니다. 지금 어느 본당의 보좌 신부로 살고 있고요! 오랜 만에 얼굴을 보자 반가운 마음에 물었습니다.
“사는 거 어때, 괜찮아?” “네, 좋아요. 그리고 본당 어르신들 때문에 사제로 살아가는 맛이 나요. 어르신들에 대한 사랑에 좀 빠졌다고나 할까!” “엥! 그게 무슨 말이니?” 신부님은 본당에서 있었던 만우절 이야기를 해 주면서, 신자 분들에 대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어 행복했음을 내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 날은 만우절 날 아침인데, 주임 신부님과 공동 집전으로 미사를 봉헌하기 전에 주임 신부님이 먼저 묻더랍니다. “오늘이 만우절인데 우리 할머니들에게 웃음을 드리는 일 없을까?” 그 말에 보좌 신부님이 그 날, 명동에 미사주 사러 갈 일이 있다는 것이 떠올라, “오늘 미사 후에 명동에 갈 일이 있어서 음…, 강론 때 재밌게 해 볼께요.” 미사가 봉헌되었고 그 날 강론을 맡은 보좌 신부님은,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리고 어르신 여러분. 제가 오늘 이 미사를 마지막으로 드린 후 명동 대교구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신 여러분… ” 그런데 순간 성당 안이 웅성거리기 시작하더니, 몇 몇 신자들은 일어서서 사제석이 앉아 계신 주임 신부님 얼굴을 쳐다봤답니다. 그러자 주임 신부님은 환하게 웃으면서 두 팔로 아니라고 한 후, 입 모양으로 ‘만.우.절’이라 말해 주었습니다. 보좌 신부님은 곧 ‘만우절입니다’라는 말을 하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순간! 앞줄에 앉아 계신 할머니 두 분이 울기 시작하더니, 그 주변, 양 옆 할머니들과 한탄을 하면서 큰 소리로 소곤거리더랍니다. “뭐, 간다고? 아이고, 아이고.” “우리 신부님, 이 미사가 마지막이라고, 아이고, 아이고.” 그런데 평소 미사 때에 보좌 신부님에게 목소리가 안 들린다고 마이크로 큰 소리로 말하라고 하시던 할머니가 우시는 것을 보고 놀란 것입니다. 상황은 미궁으로 빠지자, 주변에 있는 젊은 신자 분들이 할머니들에게 가서 ‘어르신, 오늘이 만우절이예요.’ 하고 말씀을 드렸지만, 그 여파는 가라앉지 않았답니다. 갑자기 식은땀을 흘리던 보좌 신부님은 서둘러 명동 대교구청에 미사주 사러 간다는 말을 했다며 서둘러 사태를 진화했지만 할머니들의 눈물로 가라앉은 미사 분위기는 미사 시간 내내 침통한 분위기로 흘렀습니다. 예상치 못한 곤욕을 치른 보좌 신부님은 미사를 마치고 주임 신부님과 성당 마당에 나와서 신자 분들과 한 분, 한 분에게 사과의 인사를 나누었답니다. 젊은 신자 분들은 웃으면서 ‘할머니들의 눈물로 평소 신부님들의 사랑을 알 수 있었다’는 말을 해 주었답니다. 드디어 눈물의 주인공, 두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걸어오더랍니다. 보좌 신부님은 무슨 말을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죄송하다’면서 할머니 두 분의 손을 잡아 드렸답니다. 그러자 할머니 두 분은 아무렇지도 않는 듯, “아, 미사 때 우리가 운 것, 오늘이 만우절이잖아, 만우절.” 그 말을 들으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정말 ‘뛰는 분 위에 나는 분’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만우절 사건으로 그 신부님은 또 다시 할머니들의 사랑을 확인했다면서, 앞으로도 마음 따스한 본당 신자 분들을 더 잘 모실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