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331) 성급함과 체면치레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6-04-20 10:26:58 수정일 2016-04-28 22:31:51 발행일 2016-04-24 제 2991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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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제주도에 출장 갈 일이 있었습니다. 또한 제주도를 가기 전 서울 명동에서 업무 볼 일이 있었기에 비행기 표는 예매하지 못했습니다. 그 날 명동 일이 조금 늦어졌고, 서둘러 핸드폰으로 제주도 가는 비행기 표를 알아보았더니, 가격은 비슷했습니다. 그런 다음 일반 항공 시간과 표 값을 검색해 보았더니, ‘우와’, 오후 3시 30분 비행기 표가 있었고, 저가 항공보다 오히려 5000원이 더 쌌습니다. 순간, 당연히 ‘이 비행기 시간을 맞추면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에 곧바로 명동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역에 가서, 공항 철도 지하철역으로 뛰었습니다. 정말 5000원을 절약하고자 부지런히 뛰었습니다. 그리고 공항 철도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갔습니다. 김포공항 지하철역에서 내려, 오르고 또 뛰고, 또 뛰고 오르고! 온 몸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일반 비행기로 저가 항공보다 더 싸게 간다는 생각에 또 뛰었습니다. 오로지 3시 30분 비행기에만 온 신경이 집중되었습니다.

가까스로 김포공항 일반 항공 매표소에 도착한 나는 숨을 천천히 고른 후,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나는 제주도를 저가 항공으로 가지 않고 일반 비행기로 갈 정도로 내 자신이 뭔가 되는 사람인 듯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내 차례가 되었고, 항공사 직원이 물었습니다.

“어디 가시는지요?”

나는 주민등록증을 꺼낸 후 말했습니다.

“3시 30분, 제주도 가는 비행기 표 부탁합니다.”

그런데 시간상으로는 7분 정도 남아서 그랬는지, 그 직원은 어딘가에 전화를 했습니다.

“지금 3시 30분 손님 태울 수 있을까요? 아, … 네, 지금 곧 서두르라는 말이죠? 잠시만요.”

그 직원은 나에게 짐이 있는지를 물었고, ‘곧바로 비행기를 탑승하러 가야하는데 괜찮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나는 당당하게,

“예, 짐 없어요.”

나는 저가 항공보다 오히려 5000원이나 더 싼 일반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를 편안하게 간다는 생각을 하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그리고 그 직원은 나의 주민등록증을 받고 난 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더니 말했습니다.

“네, 요금은 8만8000원입니다.”

‘헐, 3만3000원이 아니고 8만8000원이라고, 헉!’ 나를 태울 일반 비행기가 마지막 손님인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과 프린터에서 출력해서 나오는 8만8000원 비행기 표를 보면서 잠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습니다. 나는 용기를 내서, 몸을 쭈빗거리면서 물었습니다.

“혹시 특가 표는 없나요?”

이 물음에 항공사 직원은,

“아, 그 표는 인터넷으로만 구입할 때 가능합니다.”

항공사 직원은 내 눈을 쳐다보며, 빨리 표를 가져가시라는 눈빛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다른 비행기를 탈게요’라는 말을 못했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일반 항공을 탈 사람인 것처럼 거들먹거렸기에, 8만8000원짜리 표를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속으로는 ‘10분이나, 20분 정도 늦게만 타도 4만 원 정도의 표가 있는데…!’ 울며, 겨자를 먹는 기분이었습니다.

성급함과 체면치레, ‘내가 이런 사람인데’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내가 누군인지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죄송합니다. 가격이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비싸군요. 저는 좀 더 싼 다른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를 갈게요”라는 말을 못했습니다. 휴…. 그 날, 성급함과 체면치레 때문에 비싼 비행기 표를 부여안고, 슬픈 마음으로 제주도에 내려갔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