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334) '축하합니다. 당신의…' (하)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6-05-10 수정일 2016-05-11 발행일 2016-05-15 제 2994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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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분식점 식탁 위에 엄청나게 많은 양의 음식이 올려져 있는 것을 보고 그만 기겁을 해 버렸습니다. 이어서 마무리로 음료수 네 개와 물이랑 물 컵까지. 이 모든 것은 좀 전에 내가 장난스럽게 시킨 것입니다. 세상에! 나는 놀란 눈으로 형제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융통성 있게 시키지! 정말 다 시켰어? 그리고 우리 네 사람이 다 먹을 수 있을까?”

그러자 형제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 먹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알고 보니 분식점 주인 아주머니도 형제들이 음식을 너무 많이 시켜서 말렸다고 합니다. 그러자 형제들이 오히려 주인아주머니에게 ‘우리 강 신부님은 다 먹을 수 있는 분’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답니다. 이 웬수들! 자랑스러울 것이 따로 있지! 할 수 없이 음식을 좀 먹으려고 젓가락을 드는데, 눈에 보이는 음식 양에 질리고, 도저히 먹을 엄두가 안 나고!

그런데 더 당황스러운 것은 시간이 인근 학교 학생들 수업이 끝난 때라 학생들이 분식집에 와르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 늙은 아저씨 네 사람이 그 작은 테이블 위에 참치 김밥 4줄에 떡볶이 4인분, 순대 1만 원에 튀김 1만 원, 오뎅이랑 튀김 만두 세트, 그리고 쫄면 하나, 치즈라면 하나를 올려놓고 먹으려는 모습에 경악을 한 듯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한숨을 쉰 다음, 형제들에게 서둘러 먹고 빨리 나가자고 했더니, 형제들은 나보고 대뜸 ‘식사 전 기도’를 해 달랍니다. 당시 상황은 분식점 안에 있는 학생들이 엄청난 양의 음식을 시킨 아저씨들이 저 양을 어떻게 다 먹나 신기한 듯 쳐다보는 분위기인데, 그 순간 기도를 하라니! 정말 처음으로 기도가 부끄럽게 느껴지기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식사 전 기도를 마치고 다시 젓가락으로 음식을 먹으려는 찰나, 갑자가 형제들이 준비가 된 듯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의 영광스런 축일을 진심으로 이 기쁨 축하드립니다….”

그렇습니다. 형제들은 나의 영명 축일 축하식을 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수도원에서 축일이 되면 불러주는 축일 축하곡을 분식점, 음식을 엄청나게 주문해 쌓아둔 식탁에서 나에게 불러 준 것입니다. 형제들의 해맑은 표정으로 부르는 노래를 듣는데, 순간 행복하기보다는 나의 고개를 의자 밑으로 묻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혼자 중얼중얼거렸습니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이 순간도 다 지나간다. 지나가라, 지나가라….’

사방에서 키득 키득, ‘아저씨들 노는 거 참 귀엽네’ 하며 웃음 가득한 표정이었습니다. 나는 순간 분식점에 있는 학생 중에 누군가가 이 모습을 동영상이라도 찍지 않나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다행히도 그런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무튼 내 생애 처음으로, 이상하고 요상한 축일 잔치가 벌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기뻐야 할 축일 축하식인데 부끄럽고,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을 용기도 안 났습니다. 그냥 빨리 나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우리는 말없이 먹은 데에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싸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다 포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분식집을 나오면서 내가 음식 값을 계산하려고 했더니, 이미 형제들이 다 계산을 해 버렸습니다. 한 달에 용돈을 몇 만 원 정도 받는 형제들이 자신들의 용돈을 털어 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음식을 주문하고 계산까지 해 버린 것입니다.

나의 축일, 기쁜데, 창피스럽게 기쁘기도 한데…. 주책없이 얼굴만 계속 붉어 졌습니다. 분식점을 나와서 형제들에게 물었습니다. ‘왜 계산했냐고’ 그러자 형제들은 그냥 내가 형제라서 자랑스럽고, 그냥 고마워서 그랬답니다. 그날, 형제들과 돌아오면서 내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석진아, 순수하고 따스한 형제애가 좋아, 아니면 점잖고 우아한 체면이 좋아! 얼른 대답해봐, 석진아!’ 그런데 그날은 아무런 대답을 못 했습니다. 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