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338) '땡'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6-06-07 수정일 2016-06-08 발행일 2016-06-12 제 2998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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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40여 분의 신자들과 함께 박해시기에 형성된 교우촌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습니다. 교우촌을 가면서 종교 자유 이후 교우촌마다 종탑을 세워 종을 달았고, 그들에게 종소리는 신앙의 자유에 대한 울림이었다는 이야기, 교우촌 신자들은 종소리로 하루를 살았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순례를 마치고, 어느 공소에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강론 때에도, 교우촌 마다 처음으로 종을 칠 때 그 소리가 산골짜기로 퍼져 나가던 그 순간의 감격을 머릿속에 그려보았습니다. 미사는 계속 진행됐고, 성찬례를 거행할 때였습니다. 봉헌 예절 동안 미사 해설자를 힐끗 보니, 그분이 뭔가를 두리번거리면서 찾는 것 같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큰일은 없겠지!’ 싶어 성변화 경문을 천천히 읽을 때였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거룩함의 샘이시옵니다. 간구하오니 성령의 힘으로”

“땡”

내가 두 손을 모아 봉헌된 빵과 포도주 위에 펴 얹는 순간, “땡”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미사 해설자가 자신의 입으로 종소리를 낸 것입니다. ‘앗! 웃으면 안 되는데…. 이 거룩한 순간에, 이 놀라운 성 변화의 순간에 웃으면 안 되는데….’ 그런데 나는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다른 신자 분들도 참았던 웃음을 웃으며, 모두가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그리고 미사 해설자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습니다.

미사 해설자의 사연은 이랬습니다. 그날 미사 해설을 맡으신 분은 하루 종일 교우촌 안에서 종이 주는 의미와 종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묵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역사가 온전히 묻어 있는 공소에서 미사를 드릴 때, 그분은 복사를 대신해서 성찬례 때에 경건한 마음으로 종을 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미사 전에 종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공소에는 미사 때 치는 종이 없었습니다. 그분껜 순간 불안이 밀려왔습니다. 그래도 교우촌 종소리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한 그분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의 다짐을 했던 것입니다. ‘내 입으로 종소리를 낼 것이라고!’

그래서 봉헌 예절, 감사송 등이 끝나고 본격적인 성찬례가 거행되자 그분은 사제가 언제 빵과 포도주에 손을 얹나, 거기에 온통을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후, 입으로 종소리다운 종소리를 낼 준비를 했습니다. 이윽고 내가 빵과 포도주에 손을 얹자, 머릿속으로 우아하게 울리는 종소리를 입으로 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심호흡을 너무한 나머지 생각했던 종소리와는 달리 팔도 노래자랑에서 탈락한 사람에게 치는 종소리, ‘땡’을 큰 소리로 외친 것입니다.

아무튼 나는 입술과 혀를 깨물고, 간신히 미사를 끝낸 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눔을 가졌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오늘 미사 해설자에게 진심으로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데 많은 말이 필요 없고, 그저 단 한 마디 ‘땡’ 바로 그 말에도 모두가 웃을 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박해 시기 우리 교우촌에서 신자들은 날마다 비통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내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미사를 드리거나 공소 예절을 할 때에는 모두가 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신앙 때문에 서로가 함께 있는 순간을 감사하며 그렇게 웃었을 것입니다.”

그날의 ‘땡’ 이야기는 순례자 모두에게 행복을 전하며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습니다. 박해 시기 우리 교우촌의 대부분 이야기는 사라져가고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교우촌 생활만큼은 모두가 행복하고 기뻤을 것입니다.

교우촌은 함께 있기만 해도 하느님 때문에 행복했던 공간이었기에, 그 기쁨의 원천이신 주님께 대한 온전한 믿음, 희망, 사랑 때문에 신앙 선조들은 마침내 순교의 길까지도 기꺼이 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