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339) 너무 슬픈데, 기뻐요(상)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6-06-14 17:05:05 수정일 2016-06-15 10:28:22 발행일 2016-06-19 제 2999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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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으로 살면서 평소 마음으로 속 시원하게 알고 싶은 해답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에게 왜 고통이 필요한지, 선한 사람이나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고통을 왜 겪어야 하는지’ 입니다. 사실 예기치 않은 사건이나 사고로 인해 한 순간 꿈과 희망이 다 사라져버린 이들이 겪는 고통은 강도의 차이가 있거나, 고통에 대한 내용의 차이를 넘어 그 자체로 아픔이고 눈물입니다. 저 역시 수도자로, 또한 사제로 한 해, 한 해를 살면서 고통에 대한 나름대로의 묵상과 이해 방안을 모색해 보지만, 때로는 그 어떤 해답조차 찾을 엄두도 못 낼 때가 있습니다. 특히 하느님만 그 해답을 갖고 계시는 고통에 대한 질문에는….

평소 가족처럼 지내는 분들로 아래 지방에 사시는 부부가 있습니다. 언제나 하느님 안에서 겸손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그 분들의 모습을 보면, 그저 행복해 보이고 좋아보였습니다. 그 부부에게 기도는 삶의 중심이 되었고, 기도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으려는 모습에서 참된 신앙인의 향기를 느낍니다. 법 없이도 사는 선하고 성실하고 착한 부부! 두 분 사이에는 딸과 아들이 한 명씩 있는데, 자녀들도 부모님을 닮아서 바르게 커 왔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그 부부의 아들이 어학연수를 떠난 그 다음 날, 직장에 출근하던 딸이 큰 교통사고를 당해서…. 그 예쁜 딸이 그만…. 하반신 마비가 되어 지금까지 휠체어에 자신의 몸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당시 정말이지 청천벽력 같은 일을 당했지만, 그 부부는 오로지 하느님만 굳게 믿으면서 모질고 힘든 긴 어둠의 시간을 보냈고, 그 예쁜 딸은 마음의 안정을 찾으며 살아왔습니다. 대인 관계도 좋아서 재활 치료 도중에 비슷한 장애를 겪는 친구들을 만났고, 그들에게 좋은 벗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 후 어학연수를 떠난 아들은 돌아와 휠체어를 탄 누나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찢어질 정도로 아팠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어학연수 중에 누나의 사고 소식을 알게 되면 힘들어할까봐 전혀 알리지도 않았던 그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그 아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대학 생활을 하면서 부모님과 누나에게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올 초에 대학을 졸업한 아들은 취업 준비를 했고, 그러면서 부모님과 누나에게 자주 연락을 하면서 ‘저는 건강하게 잘 있으니,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누나도 재활 치료 잘 받으라’는 말만 했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은 서울에서 혼자 자취를 하면서 사회인으로서 첫 발을 내디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 아들은 술과 담배도 하지 않고, 키도 크고 체구도 좋지만, 마음은 순수하고 여린 청년이었습니다.

며칠 전에 그 부부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두 분 과묵하고 말 수가 없기에 오히려 내가 전화를 하는 편인데, 그 부부가 나에게 전화를 한 것입니다. 그것도 늦은 밤에!

“신부님. 죄송한데, 지금 전화 괜찮으신가요? 전화 받으실 수 있으신가요?”

울먹이는 자매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딸 때문에 무슨 일이 생겼나 싶었습니다.

“예, 자매님, 전화 괜찮아요. 그런데 무슨 일 있어요? 혹시 OO에게 무슨 일 있어요?”

“신부님, 제가 무슨 죄가 많은지, 하느님은 제게 왜 이런 시련을 또 주시는지…, 신부님…, 아들 OO가 오늘 갑자기 쓰러져서 지금 OO병원 중환자실에 누워있어요.”

“예에? 쓰러져요? 그 건강하고 착한 OO가…. 아이고!”

“예, 신부님…, 오늘 아침에…, 혹시 지금 이 곳 병원에서 병자성사를 주실 수 있으신지요?”

“당연하죠!”

나는 전화로 자매님을 안심시킨 후, 이러저러한 주변 조치를 다 취한 후 병자성사 가방을 들고 OO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