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하느님만 바라보면서 선하고 착하게만 살아온 부부. 그들에게 불현듯 찾아온 딸의 교통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부부는 사랑과 정성으로 딸의 재활을 도왔고, 이제는 딸이 마음의 중심을 잘 잡아서 집안에 평화로움이 오려는 바로 그 순간! 아…. 아들이 갑자기 쓰러져서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그저 찹찹할 뿐이었습니다.
늦은 밤 시간, 병자성사 가방을 들고 서둘러 택시를 타고 40분을 달려 OO병원 중환자실을 찾아갔습니다. 갔더니 불안하고 초초한 표정의 부부와 눈물 가득한 얼굴로 휠체어를 탄 딸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쓰러졌는지를 물었더니, ‘오늘 아침, 아들이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 아빠 이렇게 단 두 마디를 한 후 쓰러졌고, 그래서 급히 119에 신고를 해 아들에 대한 응급처지를 한 후, 그 부부는 지방에서 올라왔던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중환자실에 들어가 혼수상태로 누워있는 OO에게 병자성사를 정성껏 주었습니다. 마지막 안수를 하는데 내심으로는 성경에 예수님께서 죽은 과부의 아들에게 했던 ‘젊은이여 일어나라’는 그 말을 악을 쓰듯 하면서, OO가 다시 눈을 뜨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병자성사를 준 다음 그 부부를 위로해 드린 후, 무슨 일 있으면 다시 연락하기로 하고 택시를 타고 사제관으로 돌아오니 새벽 1시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 날! 밀린 일들을 하느라 오전 시간을 정신없이 보내고 있던 중에 정확하게 낮 12시에 전화가 왔습니다. 혼수상태에 빠진 아들의 엄마였습니다. “네, 자매님. 어때요? 우리 OO 지금 차도는 좀 있어요?” “신부님…. 신부님…. 이게 꿈이겠지요. 5분 전에, 5분 전에 OO를 하느님께서 그만…. 데려 가셨어요.” ‘아….’ 우리 서로는 몇 초간 무거운 침묵 앞에 아무런 움직임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이윽고 제가 말했습니다. “자매님, 조금 있다가 병원으로 출발 할게요.” 나는 서둘러 병원으로 갔더니, 조용한 빈소에 OO의 영정 사진만 있고, 그 앞에는 상주로 그 부부가 앉아 있었으며, 옆에는 휠체어 탄 딸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다고 누구에게 알릴 수조차 없는 부모의 마음, 그리고 아래 지방에 살다보니 누구 한 사람에게 ‘아들 죽었으니 조문하러 서울 오라’는 말도 할 수 없고! 그 부부의 망연자실한 표정이 빈소 안을 가득히 채우고 있었습니다. 쓸쓸하고 적막한 빈소에서 우리 서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그 앞에서 그 무슨 말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서로 손만 붙잡고 울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역시 함께 울어주는 것이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그 부부가 말했습니다. “신부님, 우리 아들이 하느님께 가는 길, 이렇게 외롭고 쓸쓸하게 보내고 싶지는 않은데 어디 조용하게 장례 미사 드릴 성당을 좀 알아 봐 주실 수 있으신지요?” 그제야 나는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 근처의 본당에 나의 동창 신부님이 주임 신부로 있다는 것을 생각해 냈습니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동창 신부님에게 전화를 했고, 지금까지 있었던 전후 사정을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의 전화 내용을 가만히 듣던 동창 신부님은 함께 마음을 아파하면서 말했습니다. “이런, 어쩌나. 우리 본당에서도 어제 장례가 끝나서 지금은 연령회 분들이 힘들어서 좀 쉬고 있을 텐데. 아무튼 알았어. 어떻게든 함께 해야지. 그런데 너무 마음이 아프다!” (다음 호에 계속)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