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341) 너무 슬픈데, 기뻐요 (하)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6-06-28 수정일 2016-06-29 발행일 2016-07-03 제 3001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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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두고 성가정을 이루어 오던 신심 깊은 부부에게 일어난 가슴 아픈 사건! 오로지 하느님께만 의탁하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살아왔던 부부에게 딸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서 하반신 불구가 되고, 너무나도 아름다운 청년인 젊은 아들은 갑자기 심장마비로 하느님 품으로 가고! 나는 그 부부와 함께 빈소를 지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 왜 이렇게 착한 부부에게 이 힘든 고통이 필요한지요! 평생을 선하게만 살아온 부부, 하느님께 자신의 가정을 온전히 봉헌하며 살아온 부부에게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너무나도 고요하고 허망한 분위기가 감도는 빈소와 아들의 죽음 앞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부부. 그래도 아들이 하느님께로 가는 마지막 길, 장례 미사만이라도 드릴 수 있기를 바라는 그 부부의 간절한 소망을 이루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인근에 있는 동창 신부님에게 전화를 해서, 본당 신자들의 기도를 받을 수 있는지를 물었고, 노력해 보겠다는 말을 듣고 그 부부에게 상황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정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날 저녁 무렵, 동창 신부 본당 연령회에서는 연도 책과 성수, 그리고 십자가를 가져다주면서 착한 부부의 아름다운 아들의 죽음을 애도해 주었고, 그 후로 밤늦게까지 인근 본당 신자들까지 오셔서 연도를 바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신자들은 해맑고 앳된 영정 사진 속 아름다운 청년의 얼굴을 보면서 그 청년의 부모 마음으로 함께 눈물로 기도를 드려주었습니다. 또한 동창 신부는 3일장을 지낸다는 소식을 듣고, 출관 날이 주일이라 장례 미사가 어려우니 토요일 날 와서 입관 예절을 하고, 이어서 병원 영안실에서 장례 미사를 드려주기로 했습니다.

그 다음 날에도 오전부터 얼굴은 모르지만 믿음 안에서 한 형제, 자매들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빈소에 와서 아름다운 청년을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시는 분들 중에서는 ‘살아있음이 축복’이라 말하기도 했으며, 집에 가서는 가족들에게 더 잘 해주겠다는 결심을 다지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입관 시간이 되자 많은 신자 분들이 빈소를 찾아주었고, 입관실에서 입관 예절을 하는 동안에도 끊이지 않게 기도를 바치며 아름다운 청년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습니다.

입관 예식이 다 끝나자, 이어서 장례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미사 주례는 동창 신부님이 했고, 강론은 내가 했습니다. 나 역시 울컥 나오는 눈물을 가까스로 참으며, 아름다운 청년이 장례 기간 동안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소중한 선물을 하나씩 주었다는 이야기의 강론을 했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같은 신앙을 나누는 동료 신앙인들의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켜 주었고, 그 사람이 참된 성장으로 이끌어 주었던 것입니다.

기적 같은 장례 미사가 다 끝나고, 모든 신자분들은 그 부부에게 깊은 위로와 격려를 해 주었고, 아름다운 청년의 누나도 눈물어린 밝은 표정으로 조문객들에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다 떠나고, 이제 조촐하게 식구들만 남아있는 자리에서 그 과묵한 부부는 내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신부님, 지금 너무 슬픈데…, 너무 슬픈데…, 그런데 기뻐요. 비록 내 소중한 아들을 하느님께 보내드린 이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내 아들이 하느님께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이 길에 이렇게 수많은 분들이 와서 기도를 해 주시니 …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아무도 아는 분이 없는 이곳에서, 외로운 장례를 치를 줄 알았는데 … 사랑이 충만한 장례를 거행할 수 있어서 너무 기뻤습니다.” 세상의 고통, 하느님만이 해답을 갖고 계시지만 하느님 안에서 믿음으로 우리의 삶을 나눌 때, 고통에 대한 해답 이전에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는 확신이 먼저 우리를 충만케 합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