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342) 돌과 도사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6-07-05 수정일 2016-07-06 발행일 2016-07-10 제 3002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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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교구 동창 신부님이 연구소로 갑자기 놀러왔습니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그 신부님에게 “시간에 쫓기고, 일에 치여 때로는 내 자신이 수도자가 맞는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신부님은 마치 인생의 비밀을 풀어낸 은수자처럼, 세상을 초연한 듯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살면서 죽을 고비를 넘기면, 살아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느끼게 될 거야!”

“아니, 오늘 따라 웬 도사가 다 되셨나! 무슨 일 있었어?”

그러자 그 신부님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냈습니다.

“몇 달 전부터 소변을 보는데 소변에서 갈색이 짙은 피오줌이 나오는 거야, 소변에…. 그런데 그 다음에는 이상이 없고, 그러다 며칠 뒤에 또 피가 나오다가 또 안 나오고…. 그러다보니 혼자 속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두 달 정도가 지난 후에 마음먹고 비뇨기과에 갔지. 갔더니 소변 검사와 엑스레이를 찍자고 하더라. 그러고 나서 검사 결과를 보니, 의사 선생님이 나에게 ‘소변 검사에서 피 수치가 높다’고 말하면서, 소변에 피가 나오면 열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암일 확률이 있지만, 또 거꾸로 생각해 보면 열 사람 중에 아홉 사람은 아무 이상이 없으니 편안하게 생각하라고 하더라. 그리고 엑스레이를 보더니, 신장 쪽에 마치 혹 같은 것이 보이니, CT 검사를 한 후에 다시 보자고 했어. 다행히 나는 그 날 오후에 모든 검사를 다 마칠 수 있었고, 예약 날짜를 잡은 후에 사제관으로 돌아왔지. 그런데 그 날, 병원을 나오면서부터 마음이 너무 가라앉는 거야. ‘내가 진짜 암이면 어떡하지!’ 그와 동시에 제일 먼저는 부모님 얼굴이 떠오르는데… 찹찹한 심정이 되더라. 또한 내가 암이라면 크게 걱정할 사람들 얼굴을 떠올리다 보니, 점점 내 자신이 내 안으로 갇히는 거야. 그러다보니 그 날 저녁에 여기저기서 전화가 오는데 받지도 않았고, 모든 것이 덧없고, 귀찮아 지는 거야. 그러면서 내가 왜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하면서 자학도 했지! 밤 새 한 숨도 못자고….”

“와, 놀라운 경험을 했네. 그래, 그런데 암으로 판명 받았어?”

“들어봐 좀. 그런데 그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는데 갑자기 ‘내가 사는 날까지 그저 충실하게 살면 되지, 뭐가 두려워!’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그 다음 날부터 일주일 동안 정말 열심히 살았지! 이제 곧 암이라고 판명할 테니…, 아직까지는 판명을 안 받았으니 그 전까지 열심히 살아보리라 결심을 했어. 미사도 더 정성껏 드리고, 공식적인 회의도 적극적으로 이끌고, 오랜만에 우리 본당 청년들과 만나서 평소 잘 못 마시는 맥주도 마시고 그랬어. 그리고 그 주간에 본당의 날 행사가 있었고, 학교 운동장에서 레크리에이션을 하는데 신자들과 열심히 뛰고, 막걸리도 마셨고, 어깨동무하고 노래도 불렀지. 그 날 저녁에는 행사에 수고한 형제, 자매들과 식사를 하면서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깔깔거리며 웃으며 살았어. 그리고 그 다음 날 검사 결과 보러 병원에 갔지.”

“그래, 결과가 뭐래?”

“먼저 소변 검사를 한 번 더 하재. 그래서 했지. 그러자 다시 엑스레이를 찍어보자고 하더라. 그래서 찍었지. 그랬더니 의사 선생님이 하는 말이, ‘신장에서 돌이 나올 때 아프지 않으셨어요?’하더라. 그래서 뭐 그런 것 못 느꼈다고 하니까, 그냥 나를 부러운 듯이 쳐다보는 거 있지!”

신장에 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치 악성종양인 듯 걱정하다가,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며 일주일을 더 기쁘고, 더 즐겁게,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았더니 돌이 그 신부님 몸에서 견디지를 못하고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부님은 몸속에 있는 돌로 인해 인생 초월한 도사가 되었고! ‘아, 하느님은 영원히 찬미 찬송 받으소서.’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