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나를 더 잘 아신다’
며칠 전에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생애전환기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검진표가 날아왔습니다. 건강검진을 안 받으면 개인에게 불이익이 있니, 없니 그런 말을 듣기는 하였지만, 이제 나이가 조금씩 더 들다보니, 공짜로 건강검진 해준다고 하면 그저 못이기는 척 하고 건강검진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요즘 사람 때문에 바쁘고, 일 때문에 시간이 빠듯해서, 하루 동안 시간 내어 병원에 가는 것은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건강이 최우선이지!’하며, 공적으로 나라에서 해주는 공짜 건강검진이라 억지로라도 시간을 내어 병원에 가 보리라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이왕 건강검진하는 거, 큰 병원에 가서 받아보자 싶어서 조금은 큰 병원을 찾아갔더니, 역시나 장단점이 있었습니다. 최신 기계로 검사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 등은 있지만, 예약을 잡고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특히 이번 건강검진에는 내시경 검사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조금은 불편했지만 검진과 내시경 예약 날짜를 잡은 후, 예약 당일 날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날 병원가면서 괜히 눈은 잘 보이나 싶어서 멀리 있는 글자를 혼자서 읽어 보기도 하고, 귀는 잘 들리나, 치아는 괜찮나…. 오랜만에 내가 내 몸을 살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내시경은 금식만 하고 가면 된다고 해서 큰 걱정은 없다지만 왠지 기계가 내 입속으로 들어가 나의 내장을 구석구석 살펴본다는 것이 찝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왕 사는 것 건강하게 살면 좋겠다 싶어서 마음 편안히 병원으로 갔습니다. 병원 문을 지나 ‘건강검진센터’를 찾아 갔더니, 조금은 한산한데 봉쇄 가르멜 수녀님 두 분이 내 앞에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속으로, ‘우리 봉쇄 수녀님들도 건강검진을 잘 받아야지. 그래야 이 험한 세상을 위해 오래오래 기도를 해주시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암튼 번호표를 뽑고 수녀님 두 분 뒤에 줄을 섰는데, 바로 내 앞에 계시던 연세 있으신 수녀님께서 나를 쳐다보시더니, “신부님이셔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평소보다 더 상냥한 목소리로 “예, 그렇습니다”하고 인사를 드렸더니, “어느 본당이냐?”고 또 물으셔서, “새남터 성지에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수사 신부입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순간, 그 수녀님 바로 앞에 서 계신 또 다른 봉쇄 가르멜 수녀님이 나를 향해 돌아보시더니, “아, 강석진 신부님이시죠? 그래요, 18년 전에 저희 수녀회에 오셔서 첫 미사를 해주셨지요. 반갑습니다. 그리고 가톨릭신문을 통해서 신부님 사는 모습을 알고 있어요.” 한순간 나의 온몸이 전율했습니다. ‘으악… 18년 전… 서품 받은 후… 봉쇄 가르멜 수녀원… 첫 미사… 그날… 그때의 내 모습을 지금도 기억하고 계시는 분이 있다니!’ 나는 이내 정중하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아니, 그냥 가장 공손하고, 가장 정성스러운 자세로 수녀님에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짧게 만난 후, 수녀님들은 어디론가 가시고 나는 온 몸이 얼어붙은 듯 그렇게 멍하니 있었습니다. ‘18년 전의 첫 미사 때 그 때 잠깐 본 나를 기억하는 수녀님이 계시다니!’ 그날 건강검진, 내시경 등을 받으면서도 계속 수녀님의 모습이 나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음 깊은 묵상 한 자락이 나에게 건네졌습니다. 수녀님도 한순간, 짧게 만난 나를 기억하시는데, 하느님이야 오죽 나를 잘 아시지 않겠나 싶었습니다. 모든 검사를 마친 후, 성지로 돌아오면서도 묵상했습니다. ‘하느님은 나를 더 잘 아신다!’ 나를 기억해주시는 수녀님의 짧은 한 말씀 때문에 나는 그날, 육체뿐 아니라, 정신까지도 무척이나 건강해진 행복한 하루를 보냈습니다.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