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350) 아름다운 오해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6-08-30 수정일 2016-08-31 발행일 2016-09-04 제 3010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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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오해

순박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느 신부님이 해맑은 양성자들이 살고 있는 어느 수녀원 새벽 미사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 수녀원은 이제 막 수녀원에 들어온 지원자들과 1년이 지난 청원자, 그리고 수련자들과 담당 수녀님이 함께 옹망졸망 살아가고 있는 곳이랍니다. 그날, 말씀의 전례를 마치고 신부님은 강론 때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는 이야기를 수녀님들에게 했답니다. 분위기는 마치 모두가 다 하느님 사랑에 취할 정도로 말입니다.

그 후 봉헌 성가와 예물 준비를 할 때였습니다. 다음 성작 덮개를 제대 위에 올려놓은 다음, 성반을 들고 예물 기도를 드리려는데, ‘헉!’ 성반 위에 대제병이 없더랍니다.

그래서 그 신부님은 전례 담당 수녀님을 보면서, 괜히 미안해하지 않도록 가벼운 눈짓을 한 후, 두 손을 둥그렇게 모은 후 그 모양을 강조하듯 앞뒤로 몇 번을 살짝 흔들었답니다. 순간, 전례 중에 신부님의 몸짓에 신경을 쓰던 전례 담당 수녀님이 화들짝 놀란 얼굴을 하더니 고개를 숙이면서, 오른손을 들어서 비스듬히 옆으로 내리며 ‘아이, 참. 아이 참.’ 하더랍니다.

그 신부님은 속으로 ‘어, 수녀님이 눈치를 못 채셨나!’ 그래서 신부님은 또 다시 빙그레 웃으며, 수녀님을 향해 두 손을 좀 더 정확하게 둥근 모양을 만들어, ‘대제병이 없어요’라는 무언의 언어를 날렸습니다. 그러자 전례 담당 수녀님은 좀 더 크게 행동을 하시더니 고개까지 가로저으며, ‘아이, 참. 아이, 참’ 하더랍니다. 그 신부님은 속으로 ‘음, 대제병이 없다는 뜻인가! 아니면 대제병 대신 소제병으로 하라는 뜻인가!’ 양성소 수녀님들의 아름다운 봉헌 성가는 1절이 끝나고, 2절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할 수 없이 신부님은 한 번만 더 부탁해보자는 마음으로 고개를 살짝 옆으로 하면서 한 쪽 눈을 찡끗한 후, 활짝 웃는 얼굴로 두 손을 둥그렇게 모은 뒤, 살짝 정지 장면을 보이며, 성반 위에 대제병이 없다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전례 담당 수녀님은 신부님이 미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자신이 뭔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 같았답니다.

전례 담당 수녀님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 숙이더니, 오른팔을 들고 엄지 손가락과 검지 손가락을 비스듬히 ‘X’ 모양을 만들면서 신부님께 흔들더랍니다. ‘휴…’ 신부님은 할 수 없이, 소제병을 하나 집어 성반 위에 올려 놓은 후 미사를 계속 드렸습니다.

미사 후, 제의방에서 제의를 갈아입고 나오는데 전례 담당 수녀님이 오시며, 웃으시더니,

“에이그, 신부님. 봉헌 때 왜 그리 장난을 치셔요!”

전례 담당 수녀님은 신부님이 봉헌 때 보낸 ‘대제병이 없어요’라는 신호를, 손 하트로 본 것입니다. 그 순간, 신부님도 수녀님이 손가락으로 하트 모양을 그리면서 자신에게 어떤 손짓을 한 것이 온 마음으로 이해가 되었답니다. 두 분은 각자가 보낸 무언의 표현이 아름다운 오해였다는 것을 깨닫고, 제의방 앞에서 한참이나 깔깔거리며 웃었습니다. 두 분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는 것을 온 마음으로 느끼는 아침을 맞이한 것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