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쓰신 가시관
‘이 뒷날 나를 보시고 임 닮았다 하소서/이 세상 다 할 때까지 당신만 따르리라’
1986년 서울 신학교를 찾으신 김수환 추기경은 신학생들에게 “여기 유명한 곡이 있다며 한번 들어보자”고 청했다. 그 요청에 신학생들은 열창으로 답했다. 그 곡이 바로 ‘임 쓰신 가시관’이다. ‘임 쓰신 가시관’은 정식 발매 전부터 인기가 있었다. 김수환 추기경도 입소문으로 전해 듣고 신학생들에게 요청했었다. 사랑하는 임의 뒤를 따라 살겠다는 굳은 결심이 느껴지는 곡이지만 곡을 쓰게 된 동기는 ‘외출금지’였다.
“처음 하석주 신부님께서 쓰신 ‘임 쓰신 가시관’을 접했을 때는 와 닿지 않았습니다. 너무 슬펐거든요. 슬프고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에 한쪽으로 밀어뒀었는데 신학교 2학년 때 하느님의 섭리로 곡을 쓰게 됐습니다. 그때 제가 3개월 외출정지를 당했거든요. 그때 신부님의 시에 곡을 붙였죠.”
모두 외출 나가고 텅 빈 교정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무료함을 달래려 성당에 있는 오르간을 연주하고 있을 때 문득 선율이 떠올랐다. 첫 선율을 떠올리고는 숙소로 돌아와 기타를 치며 곡을 완성했다. 그 곡을 친구들에게 들려줬는데 반응이 뜨거웠다. 눈물을 흘리는 선배도 있었다. 이 곡에 감명받은 신학생들은 본당에 곡을 소개했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임 쓰신 가시관’은 정식 음반으로 발매되기 전부터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곡이었지만 정작 작곡자는 이 곡의 은총을 잘 몰랐다. 신상옥씨에게 ‘임 쓰신 가시관’이 은총으로 다가온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제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 있었습니다. 믿음은 있는데 악에 더 빠져 있었죠. 제가 죄인 중의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이 곡은 큰 은총으로 다가왔습니다.
곡을 쓰고 20년이 더 흐른 뒤였어요. 그런 깨달음이 있고 난 뒤에 ‘임 쓰신 가시관’을 부르는데 마치 하느님께서 저를 안아주시는 것 같았어요. 제가 달려가야 할 길을 20년 넘게 부르면서도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신상옥씨는 ‘임 쓰신 가시관’을 수백 번도 넘게 불렀지만 임종을 앞둔 환자들 앞에서 불렀을 때를 잊지 못한다.
“‘임 쓰신 가시관’을 들은 환자분들 중 제 손을 잡고 ‘내가 천국에 가면 신상옥씨를 위해서 기도할게요’라고 이야기해 주신 분들이 많아요. 그분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불렀는데 오히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그분들은 죽음을 받아들이고 삶을 잘 마무리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계셨어요. ‘임 쓰신 가시관’을 통해 하느님께서 큰 은총을 베풀어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자유를 갈망하던 신학생은 외출정지라는 벌을 받았지만 ‘임 쓰신 가시관’이라는 선물도 함께 받았다. 그리고 그 선물은 우리 모두에게 은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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