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보 보도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우리나라에서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으로 살(殺)처분된 동물은 총 8524만여 마리이며, 총 4조 4038억 원의 비용이 지출됐다고 한다. 최근 발생된 경우만도 3월 말 현재까지 살처분된 닭, 오리 등은 3720여만 마리이며, 총 3600여억 원이 투입됐다.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하면 예방조치로 질병이 의심되는 농장과 그 농장의 반경 3㎞의 다른 농장을 모두 묶어서 살처분 조치를 하는데, 감염 여부를 가리지 않고 그 반경 안의 가축을 모조리 생매장한다. 몇 년 전부터 달라진 점은 구덩이를 파서 그냥 묻던 것을 플라스틱 저장조 등을 사용하는 것으로 바꾼 정도다.
이러한 집단살육방식의 매몰처분은 사후관리가 부실한 경우, 매몰지에서 제4암모늄염 등 가습기 살균제에 함유된 유해물질과 유사하다고 지적되는 오염물질들을 발생시킨다. 토양 및 수질 오염뿐만 아니라 대기오염을 일으키고, 질산과다 식물 섭취시 청색증 등 인체 질병까지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사진작가 문선희씨는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주최로 가축 살처분 현장에 관한 사진전(‘묻다-동물과 함께 인간성마저 묻혀버린 땅에 관한 기록’)을 열었다. 매몰지 중에서 3년의 법정 발굴금지 기간이 지난 4800여 곳 중 100곳의 현장을 찾아갔다고 한다.
땅 전체에 곰팡이가 피어올라있기도 했고, 콩밭으로 변한 어떤 현장에는 듬성듬성한 풀 속에 돼지뼈 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옥수수밭에서는 제대로 풀이 자라나지 못했고, 물컹한 땅은 알 수 없는 액체를 토해내고 있기도 했다고 한다.
문선희씨는 생명이 죽어 땅에 묻히고 다시 그 땅으로부터 생명이 돋아나는 자연의 순환 리듬은 거기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고 전한다. 생매장된 가축들의 비명 소리를 가두어버린 그 곳은 저주받은 채 땅이 썩어가고 있었다.
한편 겨울이면 월동을 위해 몽골로부터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오는 독수리들도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의 여파에 시달리고 있다. 주로 동물사체를 먹이로 하는 독수리는 민간인 통제선 내 월동지에서 머무르다 가곤 했고 세계적인 멸종 위기의 야생조류이기 때문에 먹이주기를 통해서 보호해 왔다.
그러나 먹이주기 행사가 중단되면서, 독수리들이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축산농가들에 떼 지어 나타난다. 그리고 농약을 먹고 죽은 먹잇감을 잘못 먹고서 길바닥에 죽은 채로 발견되기도 한다. 2011년에 구제역 발생으로 350여만 마리의 소와 돼지가 생매장된 임진강 근처 야산의 한 매몰지에는, 먹이를 찾는 수백 마리의 독수리 떼가 몰려와 앉아 섬뜩한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우리가 값싼 가격에 더 많은 육식을 즐기기 위해서 공장식으로 가축들을 대량생산하는 동안에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로 가축들은 계속 생매장 당하고 있고, 땅은 저주받아 썩어가고 있으며, 야생의 순환 리듬은 교란되고 파괴된다.
성경 말씀 중에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들이 모여든다’(마태 24,28; 루카 17,37)는 구절이 있다. 우리의 이런 상황이 초래할 재난을 예고하는 듯해서 이 구절을 읽을 때 가슴이 서늘해졌다.
성경의 이 종말론적 메시지는 우리에게 깨어있으라고 촉구한다. 또한 아무도 심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리라는 경고를 보내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인간 외의 다른 존재에 대한 관심을 너무나 상실해버렸다. 언젠가 우리 안으로 독수리들이 모여들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