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친구의 이름으로 온 천사 / 이애진

이애진 (수산나) 시인
입력일 2018-07-03 18:30:48 수정일 2018-07-03 19:25:06 발행일 2018-07-08 제 3102호 2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초등학교 3학년 때쯤으로 기억되는 어느 가을날, 친구를 따라 숨 가쁘게 언덕을 올라 도착한 곳은 서울 마포구 꼭대기의 어느 성당이었습니다. 하얀 미사보를 쓴 신자들의 뒷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답고 성스러워 어린 제게는 충격이었습니다. 친구는 엉거주춤 서 있는 제 손을 끌고 의자에 앉게 했습니다.

어린 날 처음 가본 성당은 몇 컷의 각인된 그림이 전부입니다. 친구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고 왜 그곳에 갔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가끔 그날이 아득한 그리움으로 떠오릅니다. 빛살이 너무 강해 두 손으로 빛을 가렸을 때 엉거주춤 서 있는 저를 친구가 의자에 앉히지 않았다면 저는 주저앉거나 밖으로 뛰쳐나갔을 겁니다. 이렇게 그분과 저의 첫 만남은 강한 빛이었습니다.

불교 집안인 저희 집에는 늘 스님이 드나들었고 며칠씩 집에 묵기도 했습니다. 저는 할머니와 어머니를 따라 절에 자주 갔고, 조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장례식 내내 목탁소리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런 중에도 혼자 속으로 생각하는 게 있었습니다. ‘내 마음대로 해도 좋을 나이가 되면 꼭 성당에 나가야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짐은 까마득하게 잊고 성인이 돼 연극계 일을 할 때였습니다. 서울 중구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장기공연을 하면서 다른 작품도 준비하느라 공연장과 연습장을 바삐 오가던 시절, 어쩌다 자투리 시간이라도 생기면 저도 모르게 발길은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뚜렷한 목적도 이유도 없이 성모상 앞에 우두커니 서 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 한참 앉아 있다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어느새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고 누군가가 저를 보호해주기라도 하는 듯 막연한 힘이 생겼습니다. 그리고는 제 삶에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할 때, 혼자 해결이 불가능할 때도 어김없이 성당을 찾았습니다.

그 시절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는 구절이 마음속에 늘 맴돌고 있어, 신에 대한 뚜렷한 믿음도 철학도 없었지만 어떤 절대자에 대한 순수한 마음이 기도로 전해졌습니다. 놀라운 건 그때마다 거짓말처럼 일이 말끔히 해결됐고, 우연한 기회에 천주교 신자인 친구를 만나 세례를 받고 수산나란 세례명으로 새 삶이 시작됐다는 점입니다. 저를 천주교에 입문하게 해준 친구가 무척 고마웠습니다. 그 후 저는 개신교 집안으로 시집을 왔지만, 시조모님이 돌아가신 후 바로 관면 혼인을 하고 남편과 시동생 모두 개종해 천주교 신자가 됐습니다.

크신 분의 사랑에 감사하며 가진 것 없어도 현재 제 삶은 평화롭습니다. 때로는 회의도 하고 힐끗힐끗 뒤돌아보며 살기도 하지만 초심을 잃지 않도록 애쓰며 먼 길을 부지런히 가고 있습니다. 내치지만 말아 주시고 주님 곁에 머물게 해주시길 바라며 불행이 닥쳐와도 더 큰 불행이 아님에 감사하고 헤쳐 나갈 수 있는 지혜와 힘을 주심을 믿고 예수님을 바라보면 십자가 뒤편의 빛을 느낍니다.

지금은 이름도 모습도 잊었지만, 어린 날 저를 처음 서울 마포구 언덕의 어느 성당으로 데려가 주님을 만나게 해 준 친구와 손잡고 세례를 받을 수 있게 안내해준 또 다른 친구는 아마도 ‘주님이 제게 보내주신 천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하루는 두 친구를 생각하며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애진 (수산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