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 교리서」 374~384항 삼위일체 관계를 깨는 삼구(三仇) 육체에 대한 관능적 쾌락과 재물에 대한 탐욕 경계 필요 자기만 옳다고 믿어서도 안 돼 하느님과 순수한 친교 맺어야
영화 ‘박하사탕’(2000)은 한 중년 남자가 기차에 몸을 던지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내용은 점점 과거로 돌아가며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조명해줍니다. 그 이유는 어린이처럼 순수했던 주인공이 ‘돈과 욕망과 권력’에 대한 욕구로 찌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그의 살아온 환경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말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을 산 사람이라고 다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순수했을 때의 주인공은 박하사탕을 주던 한 여인의 진실한 사랑에 행복해했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행복의 맛을 잃고 세상이 주는 쾌락을 쫓았습니다. 박하사탕의 작은 달콤함을 버리고 돈과 쾌락과 명예를 좇은 것은 그의 선택이었습니다. 박하사탕이 군홧발에 짓밟히는 순간 우리는 그가 참 행복을 볼 수 있는 눈을 잃어버렸음을 직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학생을 고문하는 인정사정없는 경찰관, 돈만 아는 사업가, 바람피우는 남편이 될 것도 알게 됩니다. 더 나아가 왜 영화 첫 장면에서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절규하며 기차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는지도 알게 됩니다. 주인공이 다시 되돌려 받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시간적인 과거가 아니라 그 과거에 가졌던 어린이처럼 ‘순수했던 마음’입니다. 어린이는 ‘부모만’ 바랍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갈수록 부모보다는 ‘부모가 줄 수 있는 것’을 더 바라게 됩니다. 에덴동산에서 살았던 아담과 하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이 아니라 하느님 것인 선악과를 더 바라게 된 것입니다. 이는 마치 아버지의 유산을 달라고 청하는 탕자의 모습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닌 아버지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들로 행복을 추구하려 했던 것입니다. 교회는 그렇게 하느님과 등지게 만드는 세속적 행복을 세 가지로 구분해 가르쳐왔습니다. 이를 전통적으로 ‘삼구’(三仇, 세 가지 원수)라 불렀습니다. “시초부터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맡기신 세상에 대한 ‘다스림’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다스림으로 실현되었다. 관능적 쾌락, 세상 재물에 대한 탐욕, 반이성적 자기주장 등 이 세 가지의 욕망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에, 인간은 흠 없고 질서 잡힌 존재였다.”(377항)전삼용 신부rn(수원교구 영성관 관장·수원가톨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