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처럼 사춘기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부모로서 사랑에 대한 도전이다 과연 이렇게 해도 사랑해줄지 아이는 끊임없이 화두를 던진다 품기 어려운 존재를 품는 것, 사랑은 원래 그래야 하는 것이다
간만에 일찍 퇴근해서 가족들과 밥을 먹게 되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달려와 안기는 둘째, 셋째와 달리, 사춘기 첫째는 식탁에서 서로 마주할 때까지 무뚝뚝했다. 얼마 전 학원을 고급반으로 옮긴 터라 숙제가 많아졌는데, 밤늦게 고생하는 것이 안쓰러워 말을 꺼냈다. 숙제가 많지 않은지, 할 만한지, 잠이 적어 피곤하지 않은지. 그러다가 휴대전화 사용을 더 줄이고 숙제에 더 집중했으면 한다는 쪽으로 이야기가 번졌다. 이전까지 최소한의 고개 끄덕임과 ‘어, 아니’라는 말로 의사소통을 하던 첫째는 아무 말이 없어졌고, 급기야 남은 밥을 한입에 쑤셔 넣고 자리를 떠버렸다. 자기는 공부 못하는 아이가 돼도 괜찮다는 말을 남기고….
당황스럽고 황당하고 속이 상했다. 가족들과 즐겁게 식사하려는 순수한 마음과 아이에 대한 걱정과 관심에서 시작된 저녁 식사 대화였는데, 그것을 몰라주고 매몰차게 거부당한 것이 야속했다. 맨날 늦게 자서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해서 친구들과 문자 좀 줄이고 숙제에 집중하면 더 일찍 잠자리에 들 것 같아 꺼낸 이야기였는데, 아빠의 진심이 거절당했다. 아이에 대한 사랑과 관심, 연민 때문에 시작된 저녁식사 대화는 아이에 대한 서운함과 분노로 끝이 났다. 하느님이 주신 사랑의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 나의 인간적인 생각이나 행동을 거치더니 급기야 미움과 분노 같은 악마의 마음으로 종결되었다. 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 앞에 내 하루를 성찰하면서 나를 사로잡았던 그 일에 집중하여 내 생각과 마음을 돌아보았다. 아이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아이가 움직여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음을 보게 되었다. 아이가 왜 늦게까지 친구들과 문자를 하는지 이해하지 않은 채, 아침에 일어나기 힘드니까 그것을 그만둬야 한다고 먼저 판단하고, 해결책을 찾아 가르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 나의 행동에 아이는 아이대로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꼈을 것이다. 큰애가 얼마나 속상했을까. 미안함이 올라왔다.한준(요셉·한국CLC 교육기획팀장)rn기후변화 관련 정부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