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우산을 펼쳤다 접었다 하는 일이요,
죽음이란 우산을 더 이상 펼치지 않는 일이다.
성공이란 우산을 많이 소유하는 일이요,
행복이란 우산을 많이 빌려주는 일이고,
불행이란 아무도 우산을 빌려주지 않는 일이다.
-김수환 추기경의 ‘우산’ 중
■ 경제관련 공약
입법과 예결산 심사, 국정조사와 감사, 청문회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할 300인의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총선은 국가의 발전을 가늠하는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은 경제 분야에 대한 질문입니다. 각 당의 공약을 살펴볼까요?
한마디로 세 정당의 경제·노동 관련 공약이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일단 A당은 청년과 소상공인, 중소기업에게 공약을 집중한다는 취지로 보입니다. B당은 작년 9월 ‘민부론’에 이어 이번 총선에도 친기업, 규제완화, 시장중심의 정책과 함께 국민소득 5만 불과 중산층 70% 달성이라는 놀라운 약속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현재 유럽과 북미에서 자국보호주의와 사민주의(社民主義,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복지정책이 각광 받고 있으며, 중국, 러시아, 베트남 등지의 국가주도형 발전모델이 관심을 받는 세계적 동향에서 시장중심 정책만을 편다는 것은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반면에 C당은 신자유주의와 시장경제의 역기능을 견제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규제 강화와 친노동자 중심의 정부주도형 대안들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회구성원들을 아우르는 공감대를 위해 유연한 방법과 소통이 좀 더 필요해 보입니다.
■ ‘도덕과 인간존엄’, 경제발전의 참된 목적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던 청년 김용균이 산업재해로 사망했고, 그 후 9개월여 만에 특별조사위원회는 다음의 결론을 발표했습니다. “사고의 1차 원인은 사업장의 안전관리 소홀이었고 자회사를 통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채용이 비용절감 외에 다른 목적이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장시간·저임금·고위험 노동에 노출됐으며 이는 결국 생명과 안전을 경시했던 무분별한 민영화와 외주화의 결과다.” 그리고 특별조사위는 해당 사업장에 민영화 철회를 권고했으며 현재 공기업화의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이를 단순한 사고로 볼 수 있을까요? 그러나 한 해에 2000명 가까이 다치고 그 중 855명이 사망하는 현실(2019년 기준)은 여전히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인간존엄과 생명, 안전이라는 목적이 결여된 경제와 민영화는 인간과 사회를 죽음에 이르게 할 뿐입니다.
■ 경제적 차원과 신앙의 차원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
경제라는 말의 뿌리인 그리스어 오이코노미아(οἰκονομία)는 집(오이코스)과 관리(노미아)의 합성어로서 살림살이, 가계 등을 뜻합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 이는 하느님의 경륜(徑輪), 즉 ‘세상 안에서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구원의 섭리’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에페 3,2) 가톨릭 사회교리는 ‘경제발전은 도덕적 목적을 갖고 모든 사람을 지향해야 한다’며(333항) 자율시장경제의 장점을 인정하고(347항) 시장과 국가는 상호 보완적이어야 한다고(353항) 가르칩니다.
선거에 이기기 위한 말뿐인 정책이 아니라 진심으로 국민을 위한 목적을 두는 가운데 양자가 어떻게 상호보완될지가 관건이 아닐까요? 싸움을 위한 싸움, 비판을 위한 비판, 선거에 승리하기 위한 빈 경제 공약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과 나라를 아끼는 정당들의 협력과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도덕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제 활동은 개인의 성장에 유용한 재화와 용역의 생산에서 오는 봉사이며, 모든 사람이 연대를 실현하고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인 사람들과의 친교의 소명을 실천하는 기회가 된다.”(「간추린 사회교리」 333항)
이주형 신부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