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순서>
① 희망을 심다 – 해밀학교
② 희망을 꿈꾸다 - 성 요한의 집
➌ 희망을 전하다 – 희망이 꽃피는 집
④ 희망을 펼치다
코로나19로 간절한 것을 포기하고, 소중한 것을 잃어야 했던 누군가에게 희망은 아득한 이야기가 됐다. 인류를 구원할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림 시기. 빛을 기다리며 우리는 잊고 있었던 ‘희망’이라는 단어를 다시 꺼내본다.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에 위치한 ‘희망이 꽃피는 집’은 3명의 수녀가 극빈자들을 위해 밥을 짓고, 어려운 형편인 청소년들의 친구가 돼주는 공간이다. 시장 한편, 간판조차 보이지 않는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이 작고 소박한 공간에서 전해진 따뜻한 희망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희망을 향한 시작
1957년, 독일에서 독문학을 공부하던 한 여성은 세례를 받던 중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이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깨닫고 복음 선포자로 살 것을 결심한다. 그렇게 돌아온 조국에서 전쟁으로 인한 가난과 배고픔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을 만난 여성은 부산에 수도회를 만든다. 1964년 창설된 ‘거룩한 말씀의 시녀회’ 창립자 장화자(힐데갈드) 수녀는 그렇게 평생을 피난민 구제와 극빈자를 돌보는 데 헌신한다. 훗날 이름을 바꿔 ‘거룩한 말씀의 회’로 활동하고 있는 이 수도회의 설립 목적은 ‘우리를 위하여 이 세상에서 스스로 가난한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며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봉헌을 하며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해 수도자들은 언제나 기꺼이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했다.
희망이 꽃피는 집도 이러한 수도회의 목적을 실천하고자 문을 열었다. 희망이 꽃피는 집의 전신인 가정방문실은 1992년 당시 전주교구장이었던 이병호 주교의 추천으로 시작됐다.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누군가는 큰 부를 누렸지만, 가난한 이들은 더욱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던 1990년대. 이병호 주교는 사회복지기관이나 교회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가정을 방문해 돌보는 일을 거룩한 말씀의 회에 제안했다.
그렇게 수녀들은 수녀복을 입고 지역 곳곳을 누볐다. 언덕배기는 물론이고 길도 제대로 나지 않은 산골의 집까지, 한 손에는 무거운 짐을 들고 수녀들은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29년간 쉼 없이 걸어온 길에는 웃음과 눈물, 그리고 희망이 공존했다. 집에 좋은 일이 생기면 함께 기뻐하고, 슬픈 일엔 함께 울며 가족과 같이 보낸 시간들. 수녀들의 고된 한 걸음 한 걸음은 희망을 전하는 매개체가 됐다.
사는 모습은 서로 다를지 모르지만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별일 없으셨죠?”라고 진심 어린 안부를 건넸던 수녀님에 대한 기억은 모두에게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렇게 채워진 삶의 감사함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해졌다.
30년이란 시간을 거치며 도시의 모습도, 삶의 방식도 변했다. ‘도움을 드리겠다’며 문을 두드리는 수녀의 방문이 반갑지 않은 이들도 많아졌다. 가정방문의 문턱은 높아졌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힘들고 어렵게 지내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들의 어려움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수녀들은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을 생각했다. 그렇게 지난 11월 이름을 바꿔 문을 연 희망이 꽃피는 집은 수녀들의 발걸음이 닿지 못하는 곳에 있는 이들이 언제나 찾아올 수 있게 문을 열어뒀다. 가정방문도 병행하면서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극빈자들이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으로, 토요일에는 다문화가정, 편모가정, 다자녀가정 아이들이 쉴 수 있는 곳으로 운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