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박물관 가운데서 가장 먼저 한강변에 있는 절두산(切頭山)순교성지로 길을 떠난다. 마침 성지를 방문한 날에 새하얀 눈이 내려 성지와 내 마음을 덮어 주었다. 절두산은 예로부터 잠두봉, 용두봉으로 불렸다. 1866년 프랑스 함대가 양화진을 통해서 서울 근교로 침범해 오자 대원군은 서양 오랑캐들이 더럽힌 한강을 천주교 신자들의 피로 씻겠다며 병인박해 때 이곳에서 수많은 신자를 처형했다. 그래서 후에 절두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교회에서는 1866년에 일어났던 병인박해 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절두산에 성지를 꾸미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7년에는 절두산에 기념관이 완성되어 성지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희태 건축가의 설계로 완성된 기념관에는 성당을 비롯하여 27위 순교 성인과 1위 무명 순교자의 유해가 모셔진 성해실이 있다. 또한 성당 바로 아래에 있는 박물관에는 교회의 중요한 사료와 순교자들의 유품 등을 소장하여 전시를 하고 있다.
절두산순교성지는 그 자체로서 의미가 깊은 곳이면서 동시에 다양한 교회 미술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보물창고와 같다. 우리나라의 전통 건축 양식을 곳곳에 반영한 기념관과 작지만 아름다운 성당 그리고 내·외부에 있는 교회 미술품과 박물관에 소장된 작품은 모두 다 소중한 교회의 유산이다. 절두산에 소장한 유산을 통해서 과거 신앙 선조들의 삶과 신앙을 더듬어보며 자신의 삶을 살펴볼 수 있다.
그곳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넓은 마당과 아름다운 정원이다. 곳곳에는 여러 성상이 자리 잡고 있으면서 우리를 거룩한 신앙의 세계로 인도해 준다. 마당에는 성경을 품에 안고 강복해 주시는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상’(전뢰진 작)이 있다. 우리나라 교회의 성상 가운데서 가장 크게 제작되었다. 성당으로 올라가는 입구의 ‘순교자상’(최종태 작)은 사람들의 마음을 경건하게 만들어 준다. 정원에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상’(김세중 작)과 ‘성 마더 데레사 수녀상’(임송자 작)이 있다. 두 성인은 생전에 절두산 성지를 방문해 기도하신 적이 있기 때문에 이곳에 성상을 세웠다. 이 외에도 뒷마당에는 ‘예수 부활상’(최봉자 수녀 작)과 대형 ‘순교자 기념탑’(이춘만 작)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성당 마당과 정원에 있는 여러 성상을 둘러보면 우리 마음 안에는 어느새 신앙이 자리 잡는다.
성지 마당을 가로지르며 낮은 언덕을 올라가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성당을 볼 수 있다. 원형 형태의 성당에는 아름다운 유리화와 십자가의 길 등이 있다. 두 명의 순교자의 월계관을 들고 춤추듯이 하늘을 나는 제대 위의 ‘유리화’(이남규 작)가 성당을 더욱 성스럽게 만들어 준다. 성당 벽면에는 커다란 손과 십자가만을 부각하여 만든 ‘십자가의 길 14처’(최의순 작)가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강렬한 느낌을 준다. 제단 옆에 있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성해실에 순교 성인과 순교자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우리나라 교회가 순교자들의 희생 위에 우뚝 서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