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소팔가자
중국 지린성(吉林省) 창춘시(長春市)에서 약 30㎞거리에 있는 소팔가자(小八家子, Xiaobajiazi) 마을. 이곳 소팔가자 성당에서 최양업은 부제품을 받는다. 1796년 교우촌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소팔가자는 마을에 사는 8가구가 모두 신자여서 팔가촌이라 불리게 됐다. 소팔가자라는 마을 이름도 여기서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마을 주민의 95% 이상이 가톨릭 신자일 만큼 중국 가톨릭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 마을. 파즈 함장이 지휘하는 파보리트호를 타고 마카오를 떠나 귀국하려다 실패한 뒤 이곳에 도착한 최양업은 신심 깊은 주민들을 만나 다시 공부에 전념하고 귀국의 꿈을 키웠을 것이다.
‘김대건로(金大建路)’라 이름 붙은 도로를 따라 도착한 마을 곳곳에서 조선 신학생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최양업이 부제품을 받은 소팔가자 성당은 새단장을 마치고 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성당으로 다시 세워졌다. 성당 뒤쪽에 세워진 김대건 기념관과 김대건 성인 동상은 중국의 작은 마을에 남아있는 조선인 신부의 신앙과 삶을 기억하도록 이끈다.
■ 중국 쉬자후이
1847년 예수회는 중국 상해 쉬자후이에 본부를 세우고 성당과 수도원, 학교, 박물관 등을 건립한다. 1849년 5월 12일자 편지에 남긴 “예수회 신부님들에게는 아주 오랫동안 체류하면서 융숭한 대접을 받아 많은 신세를 졌다”는 글을 통해, 최양업이 이곳 예수회 본부에서 신학공부를 하며 많은 용기와 힘을 얻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최양업이 사제품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은 예수회 신학원 소성당으로, 새 성당인 성 이냐시오 성당은 1851년 건립됐다. 지금의 쉬자후이 성당은 같은 자리에 1910년 건립된 성당이다. 두 개의 종탑을 가진 전형적인 프랑스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교회사 학자들은 최양업이 쉬자후이 성당이나 옛 포동(浦東) 장가루촌에 있었던 장가루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