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한 교우촌과 박해의 위협
최양업은 산속에서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의 모습에 감화돼 서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신자들은 거의 모두 다 외교인들이 경작할 수 없는 험악한 산속에서 외교인들과 아주 떨어져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신자들은 거의 다 교리에 밝고 천주교 법규도 열심히 잘 지키고 삽니다… 신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육신과 세속의 모든 관계를 끊고 산속으로 들어가 담배와 조를 심으며 살아갑니다.”
이를 반증하듯 1866년 병인박해 당시에는 김사범과 김루카, 김바오로, 오요한, 오시몬 등 도앙골 출신 다섯 명이 체포돼 공주감영으로 끌려가 순교했다.
최양업은 도앙골에서 쓴 편지에서 이처럼 자신과 교우들을 항상 따라 다니는 박해와 죽음의 위협을 세세하게 적었다. 마을 사람들이 최양업 일행을 잡아 죽일 방도를 논의했고, 하루 종일 욕설과 저주, 협박을 퍼붓기도 했다. 새벽이 오기 전에 머물던 마을을 도망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최양업과 교우들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손에 맡기고 오직 하느님의 섭리를 따를 각오였다고 서한은 전한다.
“우리는 저들의 손아귀에 들어있었고 도망칠 수도 없었습니다. 온 마을이 우리를 감시하고 있었으므로 우리가 도망을 친다면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가 들었던 집에 대해서도 마을 사람들의 성을 돋우어 광분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보호 아래로 달려들고 하느님의 뜻에 모든 것을 온전히 맡겼습니다.”
도앙골성지 개발 노력
현재 도앙골성지(전담 맹세영 요한 세례자 신부)는 최양업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 이에 대한 신자들의 관심이 요청된다.
대전교구는 2011년 12월 22일 도앙골에 최양업의 시성을 바라는 기념비를 세웠다. 기념비 제막식은 전임 대전교구장 경갑룡(요셉) 주교가 주례했으며, 기념비에는 당시 해미성지 주임 백성수(시몬) 신부의 글씨로 ‘鐸德 崔良業 諡聖祈願碑’(탁덕 최양업 시성기원비)라고 한자로 새겨졌다. 기원비는 높이 약 7.5m(비석 머리 포함)로 비석 몸체와 머리, 받침 등을 모두 가공하지 않은 자연석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