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3년 주기로 마태오, 마르코, 루카 복음서의 수난기를 낭독하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과 관련된 수난곡이 있습니다. 여러 음악가들이 수난곡을 만들었지만, 바흐의 마태오 수난곡(Matthäuspassion, BWV 244)은 빼놓을 수 없는 음악입니다. 특히 첫 곡은 예수님이 겟세마니 동산에서 붙잡히시는 장면을 음악적으로 먼저 보여줍니다. 마태오 수난곡에서 실제로 예수님이 붙잡히시는 건 제1부 마지막에 가서야 이루어지지만, 이 제1부를 시작하면서 먼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이때 예수님을 잡으러 행진하고(‘탐타 탐타’), 동산으로 올라가는 유다인들의 발걸음(‘타다다다다다’하며 올라가는 음)을 곡 시작부터 베이스 악기 그룹이 잘 표현합니다. 지휘자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는 바흐의 마태오 수난곡 첫 멜로디가 마랭 마레(Marin Marais)의 ‘멜리통 추모곡’(Tombeau de Monsieur Meliton)의 첫 멜로디에서 영향을 받지 않았나 하고 추측합니다. 마랭 마레의 곡을 들어보면 마태오 수난곡과 같은 멜로디인데도 ‘비올라 다 감바’라는 악기 덕인지 그 슬픈 느낌이 얼마나 와 닿는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성삼일 테네브래 때 아침기도 첫 곡으로 부르는 시편 51편, ‘미세레레’(Miserere)와 밤기도 사이에 낭독하는 ‘예레미야 애가’(Lamentatio Jeremiae)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알레그리의 미세레레는 두 개의 합창단과 하나의 스콜라(그레고리오 성가를 부르는 선창자 그룹), 이렇게 모두 세 개의 그룹이 시편 51편을 한 절씩 주고받으면서 너무나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줍니다.
예레미야 애가는 수많은 작곡가들이 작곡하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토마스 탈리스(Thomas Tallis)의 곡을 추천합니다. 시편 51편은 다윗의 참회, 예레미야 애가는 예루살렘의 몰락에 대한 비탄을 담고 있는 곡인데 이렇게 아름다운 곡을 듣고 있자니 가사를 몰랐더라면 그냥 아름다움 속에만 폭 파묻혀 듣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조금 위험한 아름다움이기도 한데,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해당하는 성경 가사도 함께 기억하면서 들었으면 합니다.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 때 부르는 ‘참 사랑이 있는 곳에’(Ubi caritas)와 성금요일 주님 수난 예식 때 부르는 ‘비탄의 노래’(Popule meus), 저녁기도 찬미가로 부르는 ‘임금님 높은 깃발 앞장서가니’(Vexilla regis) 등도 있습니다. 프랑스의 모리스 뒤뤼플레(Maurice Durufle)와 노르웨이 출신 올라 야일로(Ola Gjeilo)의 ‘Ubi caritas’, 빅토리아의 ‘Popule meus’, 안톤 브루크너(Anton Bruckner)의 ‘Vexilla regis’를 추천합니다.
물론 성 금요일 주님 수난 예식 때 노래로 부르게 되는 요한 수난곡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바흐의 요한 수난곡(Johannespassion, BWV 245)은 마태오 수난곡과는 전혀 다르게 “주님, 저희 주님, 온 땅에 당신 이름, 이 얼마나 크시옵니까!”라는 시편 8편을 가사로 사용하면서, 존엄한 임금 앞에서 당신의 수난을 알려달라는 간청을 바치는 이의 두근대는 심장 소리를 들려줍니다.
그밖에 너무나 많은 곡들, 많은 작곡가들의 노래를 함께 나누고 싶지만, 제 욕심이 아닌가 합니다. 주님의 수난 앞에서 생생히 휘몰아치는 감정이든, 너무나 아름답게 미화한 음악이든 이 노래들이 결국 이 지상을 살아가는 우리 마음에 구원과 평화를 가져다주고, 또 세상에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을 더해주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