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데믹 이후, 움츠러들었던 문화계도 기지개를 켰다. 2023년에는 교회 안의 굵직한 역사를 기념하고 신앙의 모범이 된 인물을 기리는 문화 활동, 교회 예술에 한 획을 그은 이들을 기억하는 전시가 연이어 펼쳐졌다.
성미술 선구자들을 기억하다
올해는 한국의 스테인드글라스 선구자 고(故) 이남규(루카) 화백 선종 30주기였다. 이 화백은 1968년 우리나라 최초로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을 시작했고, 50곳 넘는 성당과 성지에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남겼다.
30주기를 맞아 서울 명동 갤러리1898은 지난 9월 이남규 30주기 기념전 ‘생명의 빛–위로와 환희’를 펼쳤다. 작가가 빛으로 표현한 신앙의 여정을 따라가는 전시였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이 화백의 작품, 여러 성당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 밑그림과 작품 사진, 이 화백을 이은 스테인드글라스 작가들의 작품이 소개됐다. 전시를 통해 많은 이가 이남규 화백의 예술혼과 빛의 예술에 담은 신앙을 묵상했다.
한국 조각계 원로 최종태(요셉) 작가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도 열렸다. 절두산순교성지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은 7~12월 최종태 작가 초대전 ‘50년 만의 초대’를 개최했다. 최 작가는 1970년대 처음으로 교회 조각을 시작했다. 한국적 아름다움을 성상에 입히며 한국교회 조각의 토착화를 구현했고, 이 과정에서 서구의 정형화된 성상에서 벗어나 교회미술에 큰 변화를 이끌어냈다. 전시는 199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조각과 회화, 판화, 스테인드글라스 등 최종태 작가의 장르별 대표 작품을 선보이며 그의 50년 구도(求道) 여정을 반추하도록 도왔다.
수교 역사 기념하고, 신앙의 모범 예술로 기리다
2023년은 대한민국-교황청 수교 60주년이었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은 10~12월 이를 기념하는 특별기획전 ‘모든 이를 위하여’를 마련하고 다양한 유물과 문서 자료를 통해 양국 관계를 톺아봤다. 서울가톨릭미술가회도 6월 서울 명동 갤러리1898에서 ‘한국-바티칸 외교 수립 60주년 기념전’을 펼치며 주한 교황청대사관 소장품을 공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신앙의 모범이 되는 인물들을 예술 활동으로 기리는 작업들도 이뤄졌다. 안중근(토마스) 의사의 시복 움직임이 일며 서울가톨릭연극협회는 10월 인간 안중근의 삶을 그린 음악극 ‘안중근의 고백(Go Back)’을 제작하고 전국 투어를 했다. 이에 앞서 신앙인이자 민족 영웅으로서 안중근을 다룬 영화 ‘영웅’도 극장가를 사로잡았다.
서울가톨릭연극협회는 ‘여걸 강완숙 골룸바’도 제작했다. 한국교회 최초의 여성 지도자였던 복자 강완숙의 삶을 다룬 음악극이다. 관람을 원하는 본당이나 단체로 찾아가는 공연으로 30차례 이상 순회공연을 펼치며 신자들에게 순교자들의 정신을 알리고 신앙을 북돋웠다.
2021년 유해가 발견된 한국교회 첫 순교자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연(야고보), 윤지헌(프란치스코) 등 세 복자를 기리는 성당들도 눈길을 끌었다. 정미연(아기 예수의 데레사) 화백은 9월 봉헌된 권상연성당 제대 십자고상부터 성수대, 십자가의 길, 스테인드글라스까지 모든 성물을 제작해 교회 안팎의 주목을 받았다. 인천가톨릭대학교 부설 스테인드글라스 연구소도 윤지충성당에 세 복자의 삶과 순교 정신을 담은 스테인드글라스 설치를 마쳤다.
가톨릭 정신을 되새기다
코로나19로 교회 역시 많은 어려움을 겪은 가운데 출판계에서는 이런 배경 속에서 더 그리스도교적이고 가톨릭정신을 새롭게 하는 책들의 출간이 활발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치를 어떤 방식으로 선보일지 고민하는 모습 속에서 신학과 신앙의 만남을 시도하는 책들이 눈길을 모았다.
「교부들의 그리스도론」(가톨릭출판사)은 교부들과 세상 가운데서 가톨릭교회 정신을 선포한 신학자들의 뜨거운 신앙 고백을 담았고, 「믿음 안에 굳건히 머무르십시오」(가톨릭출판사)와 「발타사르, 예수를 읽다」(가톨릭출판사) 등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추기경의 저서는 같은 맥락에서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북돋웠다. 특별히 「그리스도교의 오후」(분도출판사)는 팬데믹 이후 경제 문화적으로 상처입은 현대 사회에서 종교가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영성을 제시했다.
지친 이들을 위한 위로
팬데믹으로 정서적인 어려움에 빠진 이들을 다독이는 도서들의 발행도 눈에 띈다. 「힘들 때 이런 음악 어때요」(분도출판사)와 「신뢰, 우리 삶의 소중한 가치」(성서와함께), 「계절과음표들-마음을 일으키는 힘」(책밥상), 「겸손의 규칙-성 베네딕도와 함께하는 자존감 수업」(분도출판사) 등은 음악과 베네딕도 성인의 규칙서 내용 등을 통해 코로나19의 시기를 힘겹게 견뎠던 이들에게 위로와 힘을 건넸다.
한국교회 역사소설
2021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을 지내며 김대건 성인은 물론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에 대한 현양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한국교회사 및 인물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이런 면에서 관련 문학 작품이나 영화, 방송 콘텐츠의 제작이 늘어나는 현상을 보였다. 바오로딸은 「길이 된 세 청년」(개정판)과 「차쿠의 아침 마지막 이야기」, 「광암 이벽」을 출간했다. 「차쿠의 아침」 후속편인 「차쿠의 아침 마지막 이야기」는 최양업 신부를 널리 알리는 한편 후편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반가움을 선사했고, 「광암 이벽」은 소재만으로도 독자들의 큰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사랑과 혁명」(해냄)과 「불멸의 노래」(책마실) 등은 초기 조선천주교회를 다룬 대하소설로 큰 관심을 일으켰다. 류은경(보나) 작가는 「불멸의 노래」와 더불어 병인박해 무명 순교자를 다룬 「해미」(흐름출판사)도 출간했다. 순례 에세이 「내가 떠난 새벽길」(생활성서)은 브뤼기에르 주교·최양업 신부의 영적 발자취와 선교 여정을 담아 특별함을 주었다.
환경위기, 과학과 신학의 만남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지구에 대한 우려가 커짐에 따라 공동의 집 지구 생태환경에 대한 고민도 두드러졌다. 「내가 원전을 멈춰 세운 이유」(생활성서)와 「생태 사상의 선구자 토마스 베리 평전」(파스카) 등이 대표적이다.
과학과 종교, 신학을 이해하고자 하는 흐름도 읽혔다. 「과학과 종교, 두 세계의 대화」(가톨릭대학교 출판부)와 「물리학, 철학 그리고 신학-이해를 위한 공동 탐구」(가톨릭대학교 출판부), 「과학 시대에도 신앙은 필요한가」(생활성서) 등이 출판돼 과학과 종교 사이의 관계와 이해를 도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