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말씀’ ‘사랑’ 되새기며 아기 예수 탄생 묵상합니다 평화·생명-전쟁·죽음 표현한 구유 성탄 의미 깊이 묵상하도록 도와 성경 필사노트로 쌓은 구유·트리 말씀 안에서 일치하는 은총 선사 천사 날개로 장식한 ‘희망트리’ 신자들의 이웃사랑 실천 이끌어
어느 해보다 특별한 주님 성탄 대축일을 맞은 공동체가 있다. 가난한 이들과의 사랑 나눔으로 트리를 장식하고, 성경필사 노트로 트리를 세워 말씀 안에서 하나 되며, 전쟁으로 위협받는 평화의 소중함을 묵상하는 구유를 꾸며 아기 예수를 모신 본당 공동체를 소개한다.
서울 묵동본당 - 구유로 묵상하는 ‘전쟁과 평화, 생명과 죽음’ 서울 묵동본당(주임 송차선 요한 세례자 신부) 마당에 아주 특별한 구유가 놓였다. 전쟁과 평화, 생명과 죽음의 극명한 대립 속에서도 어김없이 우리 가운데 오신 아기 예수님을 묵상하도록 돕는다. 구유 오른편에는 기관총과 흩어진 탄피, 폭격에 무너진 건물 잔해와 녹슬고 휜 철근, 불에 그을린 나무가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전봇대는 금방 쓰러질 듯 위태롭다. 반면 왼쪽 공간은 평화가 충만하다. 잠들어 있는 새 생명, 아기 예수 곁을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이 가슴에 손을 얹고 바라보고 곳곳에 먹을거리도 풍성하다. 다만 위협받는 평화를 상징하듯 보금자리의 벽은 허물어졌고 곳곳에 구멍이 뚫린 지붕은 찌그러져 있다. 먹을거리 가득한 바구니도 누군가에 의해 엎어져 있다.송차선 신부는 “오늘날 우크라이나와 중동의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처참한 전쟁을 바라보며, 또 각박한 하루하루 삶을 이어가며 우리 마음이 황폐해졌기 때문에 분명 아기 예수님께서 오실 이유가 있다”며 “오늘날 예수님께서 오신다면 어떤 의미로, 어떤 메시지를 주실지 신자들이 구유를 바라보며 묵상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 구유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기다림의 마음을 담아 대림 시기부터 구유 제작을 시작한 송 신부는 고물상을 찾아 쉽게 구하기 어려운 재료를 모았다. 슬레이트 지붕은 길거리에서 우연히 찾아 재활용했다. 전봇대의 애자(礙子)는 중국에서 공수해왔다. 송 신부의 각별한 손길을 거쳐 구유가 차츰 완성되는 것을 지켜본 신자들은 “짜 맞춘 듯 획일적인 성탄 구유와 달리 특별한 의미를 담은 구유가 놓여 공동체가 성탄을 맞이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본당은 내년부터 전 신자 대상 공모를 거쳐 선정된 주제로 성탄 구유를 제작할 계획이다.서울 광장동본당 - ‘말씀성경 트리와 구유’
서울 광장동본당(주임 장혁준 요한 사도 신부)은 제대 곁에 독특한 모양의 구유와 크리스마스트리를 놓았다. 신약성경 전체를 필사한 신자 90명의 필사노트 410여 권으로 구유의 울타리를 쌓고, 트리를 올린 것. 냉담 교우들이 하루빨리 주님 품으로 돌아오고, 새 성당 건립에 힘을 보태는 마음으로 올해 전 신자 신약성경 필사에 들어간 본당은 완필자들의 필사노트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했고, 2년 전 수원교구 한 본당 사례에 착안해 구유와 트리를 만들기로 했다. 트리 바닥은 팔각 목재로 받치고 각 단마다 필사노트를 세로로 끼워 넣었다. 정성껏 써 내려 간 성경 구절이 보이도록 1~5단은 노트 안쪽과 표지가 교대로 보이도록 하고, 6단은 필사노트 겉표지 색으로 꾸몄다.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도 담았다. 표지의 3색이 조화를 이루도록 배경으로 쌓아 필사노트가 마치 성가정을 감싸 안은 듯한 구유도 이색적이다.본당 이양무(프란치스코) 교육분과장은 “평범한 트리로 생각했던 신자들이 가까이 다가와 필사노트가 꽂혀 있는 것을 보고 신자들의 정성이 담긴 말씀이 기둥과 가지를 이룬 트리라며 감탄하고 있다”며 “사목위원을 비롯한 신자들과 한 달여 트리와 구유를 준비하는 동안 말씀 안에서 하나 되는 은총을 체험했다”고 전했다.
서울 우면동본당 - ‘희망트리’
서울 우면동본당(주임 변우찬 요한 사도 신부) 신자들이 천사가 됐다. 지난 12월 2일, 성당 앞에는 전구 몇 개가 전부인 수수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졌다. 2주가 지난 14일, 트리에는 녹색 가지가 보이지 않을 만큼 주렁주렁 장식이 걸렸다. 트리 가까이 다가가자 장식을 단 주인공을 알 수 있었다. ‘데레사’, ‘요셉’, ‘베드로’, ‘클라라’. 본당 신자들은 아기 예수 탄생의 기쁨을 보다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도록 트리 가득 사랑을 달고 있다. 2019년부터 희망트리를 만들어 온 본당은 올해는 독거 중장년층 쉼터인 ‘참 소중한…’ 센터와 ‘베타니아의 집’에 기부하고 천사가 됐다는 표시로 트리에 날개를 다는 행사를 진행했다. 2일 시작한 모금은 2주 만에 600만 원을 넘었다. 그동안 라면과 연탄 등의 장식을 트리에 달았던 본당은 올해는 신자 모두 천사가 된다는 의미로 날개 모양 장식과 함께 천사 날개 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날개가 가득 달린 트리는 천국처럼 아름다운 공동체를 상징하며 밝게 빛나고 있다.심재오(루치아)씨는 “기부하고 싶어도 막상 어디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는데, 의미 있는 곳을 추천해 주셔서 기분 좋게 기부할 수 있었다”며 “올해는 날개 앞에서 사진도 찍을 수 있어서 천사가 된 것처럼 행복했다”고 전했다.
변우찬 신부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며 트리에 신자들의 사랑을 담고 싶었다”며 “어떤 화려한 장식보다도 아름다운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성당의 트리가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이승환·민경화 기자 ls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