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 쉼터] 명동성당에서 절두산순교성지까지 ‘서울 천주교 순례길’을 걷다

최용택 johnchoi@catimes.krrn사진 박원희
입력일 2016-08-23 수정일 2016-08-24 발행일 2016-08-28 제 3009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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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세례식 열리던 그날의 기쁨
모진 문초에 으스러지던 고통
걸으며 느낀다, 그리고 새긴다

서울의 천주교 순례길. 명동성당에서 시작해 절두산에서 마무리되는 총 27.3㎞ 길이의 순례길에는 한국 천주교회의 탄생과 성장, 박해와 순교의 역사가 모두 깃들어있다. 세 갈래로 나뉘는 순례길에는 유명 성당과 순교지는 물론 조선시대 관청 터까지 포함되어 있다. 최근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는 한성부 내 주요 관청 - 좌포도청, 전옥서, 의금부, 형조, 경기감영에 ‘한국 천주교 순교 터 및 신앙 증거 터’라는 안내 표석을 설치했다. 표석은 기존 각 관청 터 안내표석 부근에 세워져, 이 장소들이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 증거 터였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다음 달, 순교자성월을 맞아 이 순례길을 걸으면서, 선조들이 신앙을 증거한 장소들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가회동성당 옥상정원에서 바라본 북촌한옥마을.

■ 1코스 - ‘말씀의 길’ 명동성당~가회동성당

서울의 천주교 순례길은 명동성당에서 가회동성당에 이르는 9.6㎞ 거리의 1코스, 가회동 성당에서 중림동 약현성당에 이르는 5.2㎞ 거리의 2코스, 약현성당에서 시작해 새남터순교성지, 절두산순교성지로 끝나는 12.5㎞의 3코스로 나뉜다.

이 중 1코스는 ‘말씀의 길’로, 명실상부 한국 천주교의 상징이자 심장인 명동성당에서 시작한다. 이 ‘말씀의 길’은 한국에서 첫 세례식이 열렸던 이벽의 집 터(한국 천주교회 창립 터)를 지난다. 서울의 전통적인 중심지이자 유명 관광지인 명동과 종로, 동대문 일대에 걸쳐 있어, 600년 역사의 아름다운 고도 서울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다.

1코스는 초창기 신앙의 집회가 열렸던 김범우의 집터와 종로성당, ‘서울의 몽마르트’라고 불리는 낙산공원을 거쳐 혜화동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으로 이어진다. 이어 창경궁과 창덕궁을 지나 복자 주문모 신부가 북촌에서 사목하면서 세례수로 사용한 석정 보름우물을 거쳐 가회동성당까지 이어진다.

말씀의 길은 좌포도청 터도 지난다. 좌포도청은 우포도청과 함께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받던 시기에 신앙을 증거하고 순교한 곳이다.

을묘년(1795) 북산 사건 때 윤유일, 지황, 최인길 등이, 기해년(1839)에는 최경환 등이, 병오년(1846)에는 남경문, 임치백 등이 이곳에서 순교했다. 병인년(1866)에는 남종삼과 다블뤼 주교(Bishop Daveluy)를 비롯한 많은 신자들이 압송돼 모진 형벌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신앙을 증거했던 곳이기도 하다. 표지석은 지하철 종로3가역 9번 출구 앞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동대문을 거쳐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으로 이어지는 낙산공원길.

혜화동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세종문화회관 앞에 설치된 형조 터 표지석.

■ 2코스 - ‘생명의 길’ 가회동성당~약현성당

2코스 ‘생명의 길’은 조선시대 한옥이 한데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가회동성당에서 시작한다. 이곳 북촌한옥마을은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선교사 주문모 신부가 조선 땅에서 첫 미사를 집전한 지역이기도 하다. 가회동본당은 북촌 일대를 관할한다. 성당 옥상정원에서는 북촌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도 있다.

고즈넉한 북촌을 지나면 다시 수난의 길로 이어진다. 생명의 길은 아이러니하게도 체포된 천주교인들이 고문을 받고 순교했던 형조 터(세종문화회관 앞)와 우포도청 터(광화문우체국 앞), 경기감영 터(지하철 서대문역 4번 출구)를 지나 가장 많은 신자가 참수형을 받아 순교했던 서소문 순교성지에 다다른다. 그 끝은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중림동 약현성당으로 이어진다.

2코스에 있는 우포도청은 서울의 마지막 순교 터로, 한국 최초의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순교를 앞두고 마지막 옥중 서간을 작성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의금부(지하철 종각역 1번 출구 앞)에서는 앵베르 주교, 모방·샤스탕 신부(기해박해)를 비롯해 베르뇌 주교와 브르트니에르 신부(병인박해) 등이 사형선고를 받았다. 전옥서(지하철 종각역 5번과 6번 출구 사이)는 김대건 신부의 부친 김제준을 비롯한 많은 신자들이 옥살이를 거치면서도 신앙을 증거한 곳이다. 형조는 을사추조 적발 사건 당시 이벽, 김범우, 정약전, 정약용, 이승훈, 권일신 등 여러 천주교 신자들이 압송되어 문초를 받은 곳이다. 경기감영에서는 경기 지역 신앙공동체에서 활동하던 신자들이 체포돼 혹독한 형벌을 받았다.

서울 천주교 순례길 2코스의 종착역이자 3코스의 시작점인 중림동 약현성당.

서울 천주교 순례길의 마지막 순례지 절두산순교성지. 절두산순교성지는 가장 혹독했던 병인박해 당시,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했던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성지다.

■ 3코스 - ‘일치의 길’ 약현성당~절두산성지

마지막으로 천주교 순례길 중 가장 긴 코스는 ‘일치의 길’이다. 이 길은 약현성당에서 시작해 당고개, 왜고개, 새남터와 절두산 등 수많은 순교성인이 배출된 성지를 아우른다. 당고개 순교성지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많은 순교성인을 배출했다.

왜고개 성지는 기해박해(1839년) 당시 순교한 앵베르 주교와 모방·샤스탕 신부, 병인박해(1866년)로 순교한 남종삼, 최형, 홍봉주 토마스 등 10명의 순교자가 수십 년 동안 매장되어 있던 곳이다. 왜고개는 조선시대에 기와와 벽돌을 공급하던 와서가 있던 곳이다. 명동성당과 중림동 약현성당의 벽돌도 순교자들이 묻혔던 땅의 흙으로 만들어졌다.

새남터는 조선시대 초기부터 중죄인의 처형장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주문모 신부가 이곳에 순교한 이후,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성직자 11명과 교회지도자 3명이 순교했다.

일치의 길 마지막 순례지인 절두산순교성지는 가장 혹독했던 병인박해 동안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했던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성지다. 절두산성당과 함께 있는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27위 순교성인의 유해를 모시고 있다.

■ 순례자들은 ‘사도좌의 축복’ 받아

성지순례길 순례자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도좌의 축복’(Apostolic Blessing)을 받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8월 23일 교황청 국무원장 명의의 서한을 통해 “성지순례길을 통해 순례자들이 다시 신앙을 굳건히 하고, 시급한 복음화 임무에 온전히 헌신할 수 있길 바란다”면서 서울대교구 성지순례길을 순례하는 신자들에게 ‘사도좌의 축복’을 부여한다고 밝혔다.

또한 명동성당, 새남터성지, 절두산성지, 당고개성지, 삼성산성지, 광희문성지, 약현성당, 종로성당, 가회동성당 등 전대사 지정 본당 및 성지에서는 자비의 희년 동안 전대사도 받을 수 있다. 전대사를 받기 위해서는 성지나 성당을 방문해 고해성사와 영성체, 교황 지향 기도, 사도신경을 바치고 자비의 행동을 실천하면 된다.

최용택 johnchoi@catimes.krrn사진 박원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