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찾아 뵙지 못한 미천한 평신도로서 주교님께 감히 이런 글월을 올리게 되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신천동 본당의 신자로서 한양대학교에서 국어학을 가르치고있는 서정수 가브리엘입니다
다름 아니오라, 주교님께서 「가톨릭신문」 (1991년 10월 13일자)에 기고하신 「기도문이 우리말 보존의 주역」이라는 제목의 글에 대하여 소견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이 새로운 미사 통상문 시안 작업을 추진한 주교회의 전례위원회의 부르심을 받아 참여하여 온 저로서는 실례를 무릅쓰고 감히 이글을 올릴수 밖에 없었음을 너그러히 이해해 주시기 바라옵니다.
먼저 주교님께서 우리말을 각별히 사랑하시는점에 대하여 무척 감복하였으며 또한 우리 가톨릭의 기도문이 국어의 발전에 이바지하였다는 고견을 피력하신 점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감을 표시하고자 합니다. 또한 주교님께서 우리의 독특한 호격조사「 (이)여」관해서 애착하시고 그것을 함부로 버리지 않도록해야 한다는 점에 대하여도 국어학도의 한사람으로서 찬의를 표시합니다. 또 그것이 존대 조사의 한가지로서 「복동아」등의 「아」와 다르다고 지적하신 점도 타당성이 있다고 봅니다.
여는 최상급에 안써
그러하오나, 「주여」나 「천주여」라는 호칭이 현실적으로 타당한 존대 호칭이라고 보는 데에는 몇가지 난점이 있음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주교님께서 인용하신바 있는 「동아 새국어사전」 (1989년판)에 나타난 「이여」 (조): 자음으로 끝난 제언 밑에 불어 호칭의 대상을 감탄조로 높여 부를때 쓰이는 호격 조사.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소년이여, 대망을 품어라』
주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 풀이에서 「(이)여」가 「높여 부를때」쓰는 호격이라고는 했지만 그 보기에서 「소년이여」를 예로 든점 등을 볼때 아무래도 최상급으로 높이는 호칭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듯합니다. 존대에도 등급이 있어서「예사 높임 (보통 존칭)과」「아주높임」 (극존칭)으로 구분되는데 이 경우는아주 높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여겨집니다.
한편, 같은 사전에 나타난「이시여」라는 호격조사의 풀이를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이시여 (조) : …호칭의 대상을 감탄조로 높이여 부를때 쓰이는 극존칭 호격 조사하느님이시여/천제(天帝)시여』주교님께서도 보시는 바와 같이, 이 풀이에서는 「이시여」가 극존칭 대상자에게 쓰이는 것임을 드러냄으로써 「이여」와의 존대등급의 차이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예문에서도 「하느님」이나 「천제」와 같은 극존칭 대상자에게는 「이여」가 아니라 「이시여」를 쓴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말은 현실에 근거
이처럼 사전의 풀이를 통해서 볼때, 일반 사람의 의식에는 「주여」라고 할때의 「주」는 「하느님」이나 「천제」와같은 극존칭 대상자보다 한 등급 아래로 여겨지고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기우이기를 바랍니다만 우리가 「주여」라는 말을 씀으로써 「주」는 일반인들에게는 마치 「하느님」이 아닌 분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결과를 빚지 않았나 하는 생각까지 들게 됩니다. 더구나 웬만한 존대 대상자에게는 다붙여 쓰는 「님」이라는 조사마저도 우리의 「주」께는 안 붙인채, 보통 존대급 호격 조사인 「여」만을 붙여 계속 불러 왔으니 주님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낮게 들릴수밖에 없었지 않았나 하는 점을 생각하게도 됩니다.
이상 말씀 드린것은 사제 풀이였습니다만 현실 언어에서도 마찬가지고 「 (이)여」는 극존칭 대상자에게 쓰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 스승에게 「김선생이여」라 할수 없고 주교님이나 신부님에게 「박주교여」 「최신부여」라고 부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가 극존칭의 호격 조사라면, 선생님이나 주교님을 부를때에 쓰일 수 있어야 할 것이니 말씀입니다.
주교님, 제가 알기로는 현대의 언어 생활에서는 극존칭 대상자에게는 「님」을 붙여서 부르는 것이 상례입니다. 다만, 영탄적인 호칭이나 추도문 같은글에서는 「여」앞에 존칭 표시의 「시」를 개입시켜 「시여」를 붙여서 「선생이시여」 「임이시여」와 같이 쓰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여」만을 써서 「선생이여」「임이여」라고 한다면 한 차원 낮은 호격이 되고 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견해는 여러 문법 학자들의 저서에서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최현배 「우리말본」 (1937/1961), 이희승 「새 고등문법」(1968), 정인승 「표준문법」 (1971)허웅「표준문법」(1969).김민수ㆍ이기문「표준문법」(1970)등에 따르면 현대의 호격은 다음과 같이 쓰이는 것으로 정리됩니다.
(가) 낮춤 호격: 야, 아 (예: 철수야 복동아)
(나) 예사높임 또는 감탄 호격: 여, 이여 (예: 그대여, 임이여, 친구여)
(다) 아주높임 호격: 시여, 이시여 (예: 아버지시여, 선생이시여, 어른이시여)
대화에서는 호칭만
그러하온데 실제 대화에서는 (가)의 호격은 흔히 쓰이지만, (나)의 경우에는 조사「여」를 잘 쓰지 않고 적절한 호칭만으로 부르는 수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김선생, 김인수씨, 박형 등이라 하고 「김선생이여」와 같이 부르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또 (다)의 경우에도「시여」나 「이시여」를 붙이지 않고 「님」
「선생님」등을 써서 부르는 일이 많습니다. 「회장님, 김선생님, 신부님, 수녀님」과 같이 말입니다.
이상 말씀 드린 바는 주교님께서도 이미 아시고 계신 것으로 믿기 때문에 더 이상 부언을 하지 않겠습니다. 사전이나 현실 언어의 사용 그리고 문법학자들의 견해가 모두「(이)여」가 최상급의 존대 호격이 아니라는 점에 일치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주교님께서 지적하신바와 같이 옛날부터 「주여」「천주여」를 많이 써옴으로써「 (이)여」의 위상을 얼마큼 올려놓은 것은 사실로 여겨집니다.「주여」는「소년이여」라고 할 경우보다는 존대 등급이 높다고 인정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하오나 현실적으로 선생, 신부, 주교를 부를 때도 적절치 않은「(이)여」를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쓴다는 것은 언어 사용의 모순이 아닐수 없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주님」을 신부나 주교보다 낮게 부른다는 비판을 면할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교님, 최근에 저는「주여」에 관해서 일반인들의 견해를 들어 보려고 국어에 괸심있는 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일이있습니다. 그분은 중학생때 천주교에 나가 보았더니 하느님을「아비」라 하고 하느님의 이름을 「네 이름」이라고해서, 이 교회에서는 국어의 경어법을 무시하고 서양방식의 언어를 쓴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또 그분은 불교에서「부처여」라하고 유교에서 공자를「공자여」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관습적말 사용곤란
주교님을 비롯하여 우리 신자들은「주여」와「천주여」를 너무나 오랫동안 써왔었기 때문에 하느님께 대하여 최상의 존대가 아니라는 사실에 전혀 실감이 가시지않을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봅니다. 저도 무심코 쓸때에는 전혀 그런 느낌을 가지지 않았으며 주위의 일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느끼고 있는 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관습때문에 일반적 언어 사실을 무시하고 우리만이 독특한 관용법을 쓴다는 것은 젊은이들에게 국어의 바른 사용을 가르치는데도 혼선을 가져 온다고 여기지 않을수 없습니다.
주교님, 너무 장황한 말씀이 되고 있습니다만, 우리 교회의 호칭에서「주여」등의 호칭이 쓰이게 된 유래에 대하여 제나름대로 알아본 바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중세 국어의 문헌에 서는 호격 조사가 다음과 같이 쓰이고 있었습니다.
(가) 보통 호격: 아, 야 (예: 大德아, 舍利佛아, 長者야, 得大勢야)
(나) 감탄호격: 여, 이여 (예: 須著提여,觀世音이여)
(다) 극존대 호격: 하 (예: 님금하, 世尊하, 大王하, 聖母하, 父母하)
중세 국어에서는 (가)와 (나)의 형태는 높낮이 구분이 별로 없이 두루 쓰였습니다. 다만, (나)의「여」나 「이여」형태는 애정이나 감탄을 곁들여 부를 때에 많이 사용된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편 현대어에서처럼「시여」형태가 발달되어 있지않았기에 높은 분에게는 (다)에서처럼「하」를 붙여 쓰이는 일이있었습니다. 그런데 이「하」형태는 근대 국어에 와서는 사라지고「님」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임금님」「부처님」「부모님」등으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안병희/이광호 <중세국어문법론>)
천주님이 바른 어법
국어사적인 측면에서 볼때, 우리선조들이「주여」「천주여」와 같은 호칭을 쓴 것은 이해할수가 있습니다. 그분들이 성경과 기도문을 우리말로 옮기었던 19세기 경에는 극존대 호격조사 「하」가 거의 사라지고 「여」형태가 높낮이에 관계 없이 두루 쓰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대어에 이르러 서는 이런 호격 조사 사용에 변동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님」이나 「시여」등이 발달되어 극존칭 대상자에게 쓰이고 「여」는 그보다 아래의 인물을 가리키게 되었으며, 또한 「아」나 「야」는 그보다 더 아래사람을 가리키는 데 쓰이게 되었습니다. 이런 어법의 변동으로 말미암아 「여」는 손아래 사람을 부르는데도 안 쓰일뿐 아니라, 아주 높은 분을 가리키는 데도 못 쓰이게 되었습니다.
그러하오니 이런 어법상의 변화를 따라 우리도 이제는 바른 경어법을 써서「주여」「천주여」를 지양하고 「주님」「천주님」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주님의 위상을 누구나 최상으로 여길수 있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주교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오랫동안「주여」를 써서「여」의 존대등급을 올려 놓기는 했지만 거기에는 한계가 있고「여」의 일반적인 쓰임은 여전히 보통 존대 호격에 머물고 있음이 입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나 「마리아」와 같은 경우에는 「님」을 불여 부르는 것이 다소간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하오나 이 경우도「그리스도님」「마리아님」과 같이 써버릇하면 얼마 안가서 익숙해지리라고 믿습니다. 「예수님」이라는 호칭이 이미 우리 귀에 익은 것처럼 말씀입니다.
「시여」는 문어체
여기서 덧붙여 말씀 드리고자 하는것은 「천주시여」와 「천주님」의 용법상 차이점입니다. 본시「시여」나「여」는 일상언어에서 상대자를 부르는데 쓰이는 일은 드물고, 시나 연설문 등에서 「임이시여」「선생이시여」와 같이 쓰이는 일종의 문어체적 성격을 지닙니다. 신부님이나 주교님과 대화할때 이런 「시여」를 쓰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보지 못하고, 직접 대화를 할때는「신부님」「선생님」과 같이 부르고 있습니다. 이런 직접 호칭은「시여」와 같은 일종의 문어체적 호격보다는 더 친밀감을 줍니다. 그러므로 「천주시여」라는 호칭을 쓰면「천주여」와는 달리 존대법상 문제는 해소되지만, 그 문어체적 성격때문에 하느님과 가까이 대화한다 기보다는 격식적인 기도문을 외우는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점에서 전례 위원회에서는「시여」조차 피하고 「님」을 붙이는 것을 원칙으로 한 줄압니다.
마지막으로 주교님께서 제기하신 영광송의 문제에 관해서 제 소견을 말씀드리고자합니다. 「주 천주 성부의 아드님」이라고 했을때, 주교님께서 지적하신것처럼 「주 천주이신 성부의 아드님」이라는 해석이 나옴직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 주교님께서 지적하신 대로 쉼표를 넣으면서 「천주」다음에 「님」을 붙여「주 천주님, 성부의 아드님」과 같이 하여 약간의 쉼(pause)을 두고 발음하면 그 의미 문제가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단순히「천주님」과 같이 「님」을 붙이면 호격으로 통용되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주교님, 너무 장황하게 말씀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저의 무례함을 너그러이 용서하여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그럼, 주교님 내내 강녕하시옵기 빌며 이만 줄입니다.
서정수 가브리엘 삼가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