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같이 주일 교중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서둘러 아내와 시내버스에 올랐다. 대전 부사오거리에서 할머니 한 분이 다리가 불편한지 힘들게 버스에 올라오시는데, 자세히 보니 학교를 방문하면서 양말을 판매하는 안면이 있는 분이셨다. 근처에 사시는가보다 생각하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잠시 후 할머니께서는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묵주를 꺼내 성호를 긋고 기도를 시작하셨다. 15년 넘게 매년 한두 번씩 만났음에도 성함은 물론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기에 깜짝 놀랐고, 무엇보다 그동안 친절하지 않고 고압적인 자세로 대했던 것에 죄책감이 엄습했다. 그렇다고 당장 사죄를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다음에 학교에서 만나면 정중히 사과를 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중구청에서 내리려는데 그분도 내리시기에 이때다 싶어 얼른 다가가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며 만 원을 가방에 넣어드렸다. 내 얼굴을 어렴풋이 아시는지 “고맙다” 하시며 “어느 학교에 근무하지?” 물으셨다. 미사 시간이 다 되어 “다음에 만나면 말씀드릴게요”하고는 돌아섰고, 할머니께서는 “형제님을 위해 기도할게요!”라고 하셨다.
자매님을 처음 만난 것은 2008년 3월 초 정년퇴직을 하고 초등학교에서 꿈나무 지킴이 활동을 시작할 무렵이었다. 학년 초인 데다가 업무에 익숙하지 못해 긴장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남루한 차림에 천가방을 든 할머니가 절룩거리며 오셔서는 교감 선생님 면회를 요청하셨다. 약 한 시간쯤 후에 할머니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가셨다. 잠시 후 교감 선생님이 오셔서 “아까 찾아오신 노인분을 아세요?”하고 물으니 웃으시며 “학교를 방문하며 양말을 판매하는 분이신데 대전시 선생님들을 다 안다”면서 차후에는 가급적 교내로 들여보내지 말라는 당부의 말씀을 하셨다. 나는 2008년에 시작한 지킴이 활동을 계속하고 있고 근무하는 여러 학교마다 자매님을 1년에 한두 번씩 만나곤 하였다. 가끔 그분은 수익금을 ‘불우이웃돕기에 쓰고 있다’고 말씀하셨으나 마음속으로는 믿지 않고 생계 수단으로 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으로 죄를 지었다는 것을 오늘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성당에 들어가 곧바로 무릎을 꿇고 주님께 빌며 간절히 용서를 구했다. 그러나 주님은 무표정으로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으셨다.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은 오늘 미사 중 성수 예절이 있다는 점이었다. 성수 예절이 진행되는 동안 용서를 구하며 성수가 듬뿍 내게로 뿌려지길 기대했다. 드디어 신부님께서 내 앞으로 다가오셨고 나는 바짝 긴장하여 눈을 감고 주님을 간절히 불렀다. 순간 내 머리 위에 소낙비가 쏟아졌다. 그동안 수 없이 참례한 예절에서는 성수 한두 방울이 고작이었는데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순간 주님께서 내 죄를 용서해 주신 것 같아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고 눈물도 나왔다. 미사 후 성당에 홀로 남아 주님께 감사기도를 올리면서 나중에 자매님을 만나면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같은 교회의 지체로서 친절하게 대할 것을 약속했다.
“자매님! 꼭! 또 만납시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