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남북 관계 경색, 신앙인 역할은?
한반도 분단을 고착화시킨 6·25전쟁이 일어난 지 74년이 되는 올해, 남북 관계는 최악을 치닫고 있다. 남북은 70여 년 세월 동안 셀 수 없는 충돌과 그로 인한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실만큼은 잊지 않고 대화와 협력, 상생의 길을 열어놓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 사정은 완전히 다르다. 한반도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이나 통일사목에 종사하는 사제들 사이에서 나오는 “남북 교류가 지금처럼 평가할 대상조차 없었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는 한탄은 남북 관계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낸다.
우리 정부가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와 ‘오물 풍선’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6월 4일 ‘9·19 군사합의’ 효력을 정지시키고 2018년 4월 ‘판문점 선언’에 따라 철거된 대북 확성기를 6년 만에 재설치하는 등 남북은 서로에게 날 선 비판과 적대 감정을 여과 없이 노출시키고 있다. ‘군사력을 통한 평화’를 외치는 소리에 남북이 서로 공존해야 할 대상이고 궁극적으로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당위성마저 부인되는 듯한 형편이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김주영(시몬) 주교는 올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에서 “대화와 협력으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은 멀어지고, 군사력을 이용한 안보만 강조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며 “요즈음의 남북 관계는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차원의 위기”라고 지적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김 주교가 동족 관계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북한의 태도변화와 적대적 분단 구조 안에서 북한을 진정한 동포로 대하지 못했던 우리의 자세를 모두 비판하며 ‘회심’을 촉구한 상황에서, 남북 관계 회복을 위한 회심에 한국교회 평신도들이 먼저 앞장서고 있다.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 단체협의회 안재홍(베다) 회장은 “교회 구성원 중 사회 현실에 가장 깊숙이 발을 딛고 사는 이들이 바로 평신도들”이라며 “지금의 남북관계에 대해 교회가 제대로 발언하지 못하는 것은 사회교리를 소홀히 여겼기 때문이고, 평신도들이 앞장서 사회교리를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참혹함을 보면서도 ‘힘에 의한 평화’를 주장하는 것은 가톨릭신자로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한국교회 평신도들부터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내겠다”고 밝혔다. 6월 25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열리는 서울대교구 평단협 주최 대토론회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신앙인의 길’은 남북 관계 개선에 평신도들이 앞장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소장 강주석(베드로) 신부 또한 지금의 남북 관계를 회복하는 데에 ‘회심’을 우선적으로 강조했다. 강 신부는 “남북 간에 강 대 강의 대치 상황이 이어진다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와 군사적 충돌도 배제할 수 없다”며 “2014년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시면서 회심을 호소했던 일을 기억하자”고 요청했다. 아울러 “진정한 평화를 원한다면 상대를 비난하고 위협할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감내할 수 있는 ‘다른 방향’으로 돌아서야 한다”고 회심을 다시 언급했다.
젊은이들이 남북 관계와 통일 문제에 무관심하도록 원인을 제공한 정치권과 기성세대의 변화를 촉구한 임을출(베드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의 의견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임을출 교수는 “양극화된 정치권의 모습은 청년들을 한반도 문제에서 배제하고 있다”면서 “교회는 청년들이 북한을 이해하고 화해와 일치 증진에 관심을 갖도록 이끄는 중장기적인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