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글로벌칼럼] 프란치스코 교황이 일본을 찾은 이유

최용택
입력일 2024-10-30 수정일 2024-11-05 발행일 2024-11-10 제 3416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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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4일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원폭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하고 있다. CNS

일본 원폭 생존자 단체 ‘니혼 히단쿄’가 202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노벨위원회는 이 단체가 수상자로 선정된 이유 중 하나로 회원들이 증언을 통해 “핵무기가 다시는 사용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니혼 히단쿄가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발표됐던 10월 11일, 5년 전인 2019년 11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본 사목방문이 다시 생각났다.

당시 일본주교회의는 필자에게 교황의 일본 방문길에 함께해 달라고 요청했고, 교황이 로마에서 일본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미국인인 필자를 일본 주교단 대표라고 소개해 교황을 놀라게 했다. 물론 나도 놀랐다.

교황과 동행하면서 교황이 이번 여행에서 무엇을 하려는지 그 목적이 궁금했다. 교황은 보통 아시아 지역 사목방문 동안 하는 교회일치 기도회나 종교간 대화의 자리를 만들지 않았다. 또 일본의 문화 수도라고 알려진 교토에도 가지 않았다. 교황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방문하면서 원폭을 기억하는 박물관에도 가질 않았다. 다만 두 군데에서 핵무기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히로시마에 있을 때 그제서야 교황의 일본 방문 이유를 알게 됐다. 교황은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일본에 왔다. 교황은 히로시마 땅을 밟고 서서 자신이 2년 전 했던 말을 되새겼다. “원자력 에너지를 전쟁 목적으로 사용하는 일은 비도덕적이고,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도 비도덕적입니다.”

2017년 교황이 이런 말을 했을 때, 핵무기 보유를 비난하는 교황에 동의하지 않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들은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그 자체로 핵무기 사용을 저지한다며, 핵무기를 사용하면 핵 공격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교황은 히로시마 원폭 돔이 보이는 곳에 서서 자신의 입장을 거듭 강조하면서 이런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교황은 로마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핵무기 보유의 비도덕성에 대한 교리를 넣고 싶다고도 밝혔다.

영국 런던 킹스 칼리지 국방연구센터의 크리스천 니콜라스 브라운은 ‘군대윤리’(Journal of Military Ethics)에 이런 글을 썼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의 전임자들이 지닌 입장에서 벗어나, 핵무기의 사용을 비도덕적이라고 비판할 뿐만 아니라, 억제 목적을 위한 핵무기 보유의 도덕성도 부인한다. 필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러한 교리 변경이 진심 어린 신념에 근거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여기에는 여러 배경이 있다. 정치적 차원에서 핵무기 보유에 대한 비판은 핵 군축의 약속이 실패한 데 대한 환멸과 냉전 이후의 국제 안보 환경에서 핵무기가 초래하는 증가된 위협에 근거하고 있다. 신학적 차원에서 교황은 예언자의 목소리로 국제 사회에 대담하게 나서서 본질적으로 비도덕적인 무기로부터 세상을 정화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에는 1만2000개 이상의 핵무기가 존재한다. 러시아와 미국, 북한, 영국, 인도, 파키스탄, 프랑스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스라엘도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교황의 발언이 이들 나라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들 국가 중에 가톨릭신자나 그리스도인이 정치적 힘을 가진 나라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 정도이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주교회의가 여러 차례 군축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고, 기념일마다 주기적으로 이런 성명을 발표한다. 그리고 이런 성명은 주교회의의 이름이 아닌 주교회의 위원회의 이름으로 나온다. 미국에서는 「평화의 도전」이라는 제목으로 주교회의 차원의 성명이 나온 적이 있지만 1983년의 일이다.

물론 핵전쟁의 위협을 줄이고,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악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치 않다. 아마도 핵무기 보유국의 주교가 정부와 사회, 가톨릭신자들에게 자신의 나라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비도덕적이라고 말하는 데에 더 큰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 메시지를 듣는 사람들이 이것을 이해할까? 적어도 대부분의 신자들과 성직자들에게 ‘비도덕적’이라는 범주는 거의 배꼽과 무릎 사이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춘 ‘골반 신학’으로 오해되고 있다. 사회 정의나 전쟁, 평화와 관련된 도덕적 문제에 관해 가르치는 주교와 사제, 부제들은 동료들에게 거의 지지받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높은 사람들에게 고자질을 당할 게 뻔하다. 따라서 교황이 단순한 핵무기 보유를 비도덕적이라고 선언해도 하느님의 백성이 이 불편한 가르침에서 고립된 것은 놀랍지도 않다.

단순한 핵무기의 비도덕성에 관한 선언은 세계의 무기고에 즉각적인 영향을 주진 못할 것이다. 만약 이뤄진다고 해도 오래 걸릴 것이다. 하지만 긴 시간도 어딘가에서 시작해야 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안주하는 것에 조금 더 불편을 느끼고, 교회가 우리의 두려움에 대해 할 말이 있는지 의심하는 이들을 좀 더 위로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핵무기의 비사용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갔다. 이제 집에 남아 있는 동료 그리스도인이 그의 선언을 알리기 위해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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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윌리엄 그림 신부
메리놀 외방 전교회 사제로서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 주교회의가 발행하는 주간 가톨릭신문 편집주간을 지내기도 했다. 현재는 아시아가톨릭뉴스(UCAN) 발행인으로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