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와 죽은 이 모두를 기억하며 기도하는 공간 가꿔
서울대교구 서원동본당(주임 양권식 시메온 신부) 성모상 앞에는 작은 잔디공원이 조성돼 있다. 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담벼락의 붉은 벽돌이 눈에 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벽돌이 아닌 명패다. 이름과 세례명, 태어난 날짜가 새겨져 있는 이곳에서 신자들은 살아있는 이를 위해, 죽은 이를 위해, 모든 생명을 위해 언제든 기도할 수 있다.
“생명의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불 못에 던져졌습니다”(묵시 20,15)라는 성경 말씀에서 따온 ‘생명의 책’은 신앙과 삶을 되돌아보고 기억하는 공간이다. 신자, 비신자 제한 없이 누구나 일정 금액을 내고 20년간 생명의 책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성모님이 바라보는 자리에 세워진 명패는 총 1380개. 신자들은 자신이나 가족의 이름, 돌아가신 분의 이름과 태어난 날을 새기고 언제든 성당에 와서 기도할 수 있다.
가족의 묘소나 납골당이 멀리 있는 신자들은 생명의 책에 이름을 새기고 고인을 기억하고 자신의 삶 안에서 화해하는 시간을 갖는다. 생명의 신비로움을 기억하는 잠깐의 시간은 하느님의 신비를 체험하고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 의미 있는 순간을 제공하고 있다.
생명의 책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전영주(마리아) 씨는 “나 자신에게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어 성모님 바로 앞에 있는 명패에 이름을 새겨 넣었다”며 “내 이름 앞에서 잠깐 기도하는 순간이지만 하느님이 주신 생명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삶이 더욱 풍요로워졌다”고 말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