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트란 지음/백선희 옮김/328쪽/1만8800원
2012년 5월, 당시 세 살의 메일린은 식사 중 먹은 소시지가 기도에 걸리면서 쓰러졌다. 응급실에 실려 갔지만, 뇌에 산소가 수 분 동안 공급되지 못해 식물인간 판정을 받았다. 가족과 주위 사람들, 특히 메일린이 다니던 학교의 학부모는 19세기 교황청 전교회를 설립한 폴린 자리코 성인의 전구를 청하며 기도했다.
‘살아있는 묵주 기도회’를 조직한 이들은 성인의 도움을 청했으며, 메일린의 학교 학생들뿐 아니라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기도회 회원들도 마음을 모아 메일린의 회복을 기원했다. 결국 메일린은 회복됐다. 이 사례는 교황청 심사를 거쳐 2020년 5월 26일 ‘기적’으로 공인됐다.
아버지 에마뉘엘 트란이 쓴 이 책은 살아나지 못할 것이라는 선고를 받은 세 살의 메일린이 기적적으로 회복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아이가 쓰러지고 응급실에 실려 간 후 혼수상태에 빠져 끝내 안락사 권유까지 받았던 메일린이 의학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방식으로 회복하는 과정이다. 절망적인 죽음을 통고받는 순간들, 그리고 그 후 찾아온 기적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딸의 회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그는 일기처럼 생생하게 치유되는 과정을 그린다. 담담하게 실제 있었던 일을 적어 내려가면서 기적의 가능성을 증명한다. 기적을 경험했다고 소리 높여 외치는 대신, 차분하게 실제 있었던 일을 나누기에 더욱 기적의 현존을 신뢰하게 된다. 막막한 상황에서도 기도를 계속하며 메일린이 자신의 품으로 다시 돌아올 거라는 믿음을 놓지 않았던 메일린 가족, 또 성실한 기도와 자신보다 더 큰 존재에 대한 믿음으로 희망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았던 이들의 모습은 신앙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트란 씨는 원래 세례를 받지 않은 비신자였지만, 메일린의 사고를 겪으면서 하느님을 믿게 됐고 이제 시간이 날 때마다 성당에 들러 기도드린다. 꿈속에서 신의 음성을 듣는 기묘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 책은 우연한 계기로 메일린 이야기를 접한 박용만(실바노) 전 두산그룹 회장에 의해 한국에 소개됐다. 메일린의 사연에 알 수 없는 이끌림을 느낀 박 회장은 직접 메일린과 메일린 가족을 만나고 로마에 가서, 이 기적이 교황청에 의해 승인되기까지의 상황을 쫓았다. 이 과정은 방송 다큐멘터리로 제작되기도 했다.
메일린에게 찾아온 기적은 가족은 물론, 기도회를 조직한 학부모, 사고 이후 병원에 방문한 구급대원, 병원 의료진 등 수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삶에 대한 사랑을 새롭게 느끼게 한다. 기적은 수혜자에게만 일어나는 비현실적인 판단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펼쳐지는 구체적인 현실인 것이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