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인터뷰] 칠곡 문해학교 ‘수니와 칠공주’ 멤버 홍순연 할머니 “배움의 ‘한’(恨) 풀 수 있어 기뻐…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용기 생겼죠”
칠십 줄이 넘은 나이에 문해학교를 통해 난생처음 글을 배우면서 자식에게 편지를 쓰고, 마음을 시로 표현하는 등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디딘 경북 칠곡 할머니들. 그 가운데 칠곡군 지천면의 홍순연(81·데레사) 씨가 한글을 배우게 된 때는 2019년의 어느 날이었다.
“뒷집 사는 할머니가 같이 한글을 배워 보자며 어딘가로 데려가기에 영문도 모르고 따라 갔어요. 한 번도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었는데 무언가를 배운다는 게 설레고 좋더라고요. 힘든 시절 태어나 전쟁통을 겪다 열아홉에 결혼해 아등바등 육 남매를 키우며 살았으니….”
자식 모두 출가시키고 각별했던 친정 아버지와 시어머니, 그리고 남편까지 떠나보낸 뒤에 맞은 제2의 삶이었다. 5년여의 세월이 흐른 현재, 홍 씨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기쁨을 누리고 있다.
“평생 글을 몰라서 한 맺히는 날이 많았어요. 학교에 다녀온 아이들이 책을 펴고 질문할 때 글을 읽을 수도 없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사무쳤죠. 그런데 이제는 버스에 쓰인 행선지도 읽을 수 있으니 잘못 탈 일도 없고, 제 이름 석 자도 쓸 수 있어 좋아요.”
홍 씨는 칠곡의 유명 인사로 통하는 할매 래퍼 그룹 ‘수니와 칠공주’의 멤버로 활동 중이다. 일주일에 두세 번 연습에 참가하고 칠곡뿐 아니라 초청 공연을 통해 전국을 돌아다닌다. 지난해에는 국무총리를 만나 동료 할머니들과 그간 갈고닦은 랩 실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한글을 배우러 가니 선생님이 랩을 한번 해보자고 하더라고요. 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냥 선생님을 따라 하다 보니 사람들이 저더러 ‘할매 래퍼’라고 했죠. 말도 빠르고 가사 외우기도 어렵지만 그래도 재밌으니 계속하는 거예요.”
열심히 따라 하고 외워도 돌아서면 까먹기 일쑤다. 저녁 무렵 집에 돌아오는 손자는 홍 씨의 특별 과외 선생님이다. 가사가 적힌 종이를 펴놓고 손자에게 묻고 또 묻는 일상이지만 그래도 배운다는 것이 즐겁기만 하다. 홍 씨의 행보에 가족과 동네 주민은 물론 본당 신부님까지 “최고예요!”, “팬이에요!”라며 응원을 보낸다. 그 말에 더욱 힘을 얻어 오래오래 활동해야겠다고 다짐한다고.
홍 씨를 비롯해 칠곡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이를 소재로 한 방송과 영화, 에세이 등이 잇따르고 할머니들이 쓴 시가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기까지 한 가운데 최근에는 창작 뮤지컬까지 개막했다.
“지금껏 살면서 앞에 나선 일이 없었는데 많은 사람 앞에서 공연도 하고, 큰 관심을 받으니 신기하고 낯설었어요.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서 용기가 생겼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얼마 전에는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친정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을 담은 ‘아버지 목소리’라는 가사를 완성했다. 아직 곡을 붙여 랩을 하진 못했지만, 홍 씨는 언젠가 이 가사로 직접 랩을 하고 싶다는 희망을 품는다.
“아버지는 드러누워 소설책을 읽어주셨어. 어린 나는 옆에 누워 작은 눈을 껌벅거렸어. 아버지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듣기 좋았어. 울아버지 그 목소리 다시 한번 듣고 싶어요. 감을 따서 아버지께 보내고.”
황혜원 기자 hhw@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