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신학자 토마스 베리(1914~2009) 신부는 2001년 지구법(Earth Jurisprudence)을 제창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법률과 법체계가 철저히 우리 자신인 인간을 중심에 두고 만들어져 있고, 인간만을 주체로 한 것인데 비해서 지구법은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존재를 법의 주체로 받아들이자는 이론으로서 매우 근본적이고 획기적인 생각을 담고 있다.
토마스 베리 신부는 지구법을 ‘권리의 기원과 분화 그리고 역할’이라는 제목의 10가지 원리로 설명했다. 행성 지구 위의 자연계는 인간의 권리와 동일한 연원으로부터 권리를 갖는다. 그 권리는 우주로부터 존재에게 주어진 것이다.
지구 공동체의 모든 성원들은 3가지 권리를 가진다. 존재할 권리, 거주할 권리, 지구 공동체의 공진화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 기능을 수행할 권리가 그것이다. 모든 권리는 특정 종에 국한된 제한적인 것이다. 강은 강의 권리를 갖는다. 새는 새의 권리를 갖는다. 곤충은 곤충의 권리를 갖는다. 인간은 인간의 권리를 갖는다.
권리의 차이는 양적인 것이 아니라 질적이다. 나무나 물고기에 곤충의 권리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인간의 권리는 다른 존재 양식이 자연 상태로 존재할 권리를 파기할 수 없다. 인간의 재산권은 절대적이지 않다. 재산권은 단지 특정한 인간 ‘소유자’와 특정한 일부 ‘재산’ 간의, 양쪽 모두의 이익을 위한 특별한 관계일 뿐이다.
토마스 베리 신부는 이렇게 제시된 권리들은 지구 공동체의 다양한 성원들이 다른 성원들에 대해 갖는 관계를 수립한다고 본다. 행성 지구는 상호 의존적인 관계로 상호 밀접하게 연결된 하나의 공동체이며, 지구 공동체의 모든 성원들은 직·간접적으로 스스로의 생존에 필요한 영양 공급과 조력/지원을 위하여 지구 공동체의 다른 성원들에게 의존한다.
이러한 지구법에서는 인간만이 권리 주체가 아니라 다른 자연 존재도 자신이 지구상에 살아갈 자격을 요구하는 것으로서의 권리를 갖고 이것은 자연의 권리로 포괄된다. 특히 지난 3월 15일 뉴질랜드에서는 원주민인 마오리족이 신성시하는 황가누이 강(Whanganui River)에 권리를 인정하는 법이 의회를 통과했는데, 이것은 세계 최초로 지구법 원리가 반영된 개별적 입법이라 할 수 있어 놀라움을 느끼게 한다.
뉴질랜드에서 세 번째로 긴 황가누이 강은 북섬 중부지역에서 바다까지 145㎞를 흐르고 있으며, 마오리족이 신성시하는 수로라고 한다. 황가누이 강 주변의 마오리족 공동체는 1870년대 이래 150년 동안 이 강과의 특별한 관계에 대한 인정을 받기 위해 정부를 상대로 싸워왔다. 황가누이 강이 불가분의 살아있는 유기체로, 북섬 중앙의 산들로부터 바다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질적이고 정신적 요소들을 포용하는 것으로 항상 믿어왔기 때문이다.
이 법의 통과로 황가누이강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권리와 의무, 책임을 갖게 됐다. 강의 권리 행사를 위해서는 마오리족 공동체가 임명한 대표자 1명과 정부가 임명한 대리인 1명이 공동으로 이를 대변하게 된다. 강의 권리를 인정하는 이러한 법률의 출현은 이제까지 우리가 인간 중심적으로 법을 대해 왔던 인식을 뒤흔들어 놓는다. 새로운 생태적 세계관으로 삶을 바꾸고자 의지를 갖는다면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