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1년 조선대목구가 설정되고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 앵베르 주교가 입국하면서 조선교회는 교세가 크게 확장됐다. 그러나 1839년 3월, 전국에 천주교도에 대한 탄압이 일어나 세 선교사와 많은 신자들이 체포되고 순교한다. 이 일을 ‘기해박해’(己亥迫害)라 부른다.
부산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관장 배선영 수녀)이 「기해 1839」(212쪽/3만5000원) 특별전 도록을 최근 발간했다. 지난해 기해년 순교 180주년을 맞아 9~12월 박물관이 열었던 동명의 특별전 내용을 담았다. 기해박해를 재조명하면서 세도 정권의 흐름 속 박해 과정을 살펴본 책이다. 역사에 대한 해설과 특별전 전시유물 사진이 담겨져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특히 기해박해 당시 희생된 경남 언양 창녕 성씨 가문을 조명해, 조선후기 영남지역 천주교 전파과정을 알 수 있는 연구 자료로서 의의가 크다.
도록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 ‘조선의 서학 수용과 한국천주교회 성립’에서는 조선에 서학이 전래된 후 성직자 영입 운동으로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입국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2부 ‘세도정치와 신유박해’는 어린 순조를 대신해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고, 노론 벽파가 집권하는 배경과 신유박해 과정, 박해 후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 과정을 다루고 있다. 3부 ‘조선대목구와 기해박해’에서는 2차 성직자 영입 운동 추진 후 조선대목구가 설정되고, 세 선교사가 입국하면서 교세가 확장되는 과정이 펼쳐진다. 또 세도 가문이 안동 김씨에서 풍양 조씨로 넘어가면서 기해박해가 발생하는 모습을 설명한다.
3부에는 기해박해의 여파로 언양 창녕 성씨 가문이 희생되는 상황도 알 수 있다. 복자 윤지충, 하느님의 종 황사영 등과 교류한 성처인, 조선교구 분리 독립에 영향을 끼친 성진탁, 기해박해 때 체포돼 옥사한 성칠규 등이 소개된다. 도록은 당시 영남지역 천주교 수용이 중앙에서 전파한 것이 아니라 이곳 지역민들이 중앙과의 연결 속에서 이뤄졌음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