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제1독서(민수 6,22-27) 제2독서(갈라 4,4-7) 복음(루카 2,16-21) 구세주 예수님을 태중에 모시는 영광에도 자만심 전혀 없이 자신 희생해 하느님 인류 구원에 기여하고 겸손하셨던 성모님 한없이 초라한 마굿간 구유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 일화는 주님 말씀 겸손하게 믿는 이들에게 보여주는 하느님 나라 신비
한 수도회 피정집에 머물 때 일이었습니다. 사실 피정객들에게 있어 식사만큼 중요한 것도 없는데, 주방 자매님을 못 구했더군요. 형제들이 밥 해대느라 쩔쩔 매고 있었습니다. 저보고 발이 넓으니, 좋은 주방 자매님 한 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어떤 분을 원하냐고 물었더니, 요구 사항들이 지나치게 구체적이었습니다.
연령은 40~50대에다 음식 솜씨는 기본, 교회 기관이니 신앙심이 돈독하고, 봉사 정신도 갖춘 분. 급여에 너무 지나치게 연연하지 않는 분. 성격이 밝고, 마음씨도 따뜻한 분. 제일 중요한 것 한 가지, 입이 무거운 분! 다 듣고 난 저는 크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사님들! 그런 자매님 있으면 저부터 모셔 가겠네요. 아무리 눈 크게 뜨고 온 세상을 다녀 봐도 그런 자매님은 없답니다. 특히 입이 무거운 자매님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습니다. 참 딱 한 분 있기는 하네요. 우리 성모님!”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2, 19) 오늘 우리는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경축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셨지만 절대로 우쭐한 법이 없었습니다. 구세주 탄생이란 하느님의 큰 사업에 가장 큰 협조자로서 뭔가 기대할 만도 한데 결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저 한평생 자신 앞에 벌어진 모든 일에 대해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습니다.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진의(眞意)를 찾아 나갔습니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지면서 별것도 아닌 인간 존재가 점점 높아지려고 발버둥 칩니다. 첨단과학이 점점 발전하면서, 인간은 큰 착각에 빠집니다. 인간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착각. 그러면서 하느님의 영역, 하느님의 자리는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니 인간 측의 가장 큰 문제는 겸손의 결핍이군요. 내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도를 넘어서는 지나친 자신감이 문제입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마리아의 겸손이 유난히 돋보입니다. 마리아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영광스럽게도 하느님을 자신의 태중에 모신 분이십니다. 놀랍게도 그녀는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품에 안으신 분입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충분히 그랬을 겁니다. “내가 누군 줄 알아? 이 몸으로 메시아를 낳은 사람이라구. 내 아들이 하느님의 아들 예수라구!” 그러나 마리아는 참으로 겸손하셨습니다.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초지일관 겸손의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쓰시겠다고 하니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몸, 자신의 인생 전체를 다 내어 드렸습니다. 자신의 한 몸 희생해 하느님의 인류 구원 사업에 조그만 기여라도 한다면 참으로 영광이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이토록 겸손했던 마리아였기에 하느님께서는 그녀의 머리 위에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왕관을 씌워 주십니다. 끝없이 밑으로 내려서는 마리아를 하느님께서는 가장 높은 곳으로 올리십니다. 그 자리가 바로 ‘천주의 성모’, ‘하느님의 어머니’였습니다.양승국 신부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