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째 법<모자보건법 제14조>은 낙태 앞에 침묵한다 교회, 모자보건법 제14조 개정 외쳐 정부는 10여 차례 법 개정 나섰지만 낙태 허용하는 독소조항 계속 유지
지난 1월에 열린 미국 워싱턴 생명대행진 ‘로즈 디너’에서 한 신자 경찰관의 일화가 소개됐다. 티모시 돌란 추기경(뉴욕대교구장)이 전한 내용이었다.
그 경찰관은 범인 검거 과정에서 범인이 쏜 총 세 발을 맞고 중환자실에서 혼수상태로 지냈다. 3개월 후에야 겨우 의식을 회복했지만, 목 아래로는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장애를 갖게 됐다. 그런데 경찰관이 자신의 장애를 알고 처음 한 말은 “나는 그를 용서합니다”였다. 자신을 쏜 범인을 용서한 것이었다. 이후 경찰관은 교도소와 병원 등을 방문하면서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전하는 몫을 적극 실천하고 있다. 돌란 추기경은 “자기 한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이 경찰관은, 경제적이고 실용적인 가치, 효용성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사회에서 무가치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면서 “그런데 수많은 이들이 ‘빛’의 세계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이 경찰관이 정말 존재 가치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말했다. “힘없는 태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저항할 수도 없고 약한 이 태아들을 한 명 한 명 낙태하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경찰관을, 의사를, 그리고 내 형제를 포기하는….” 법, 관습, 도덕, 종교 등을 흔히 사회규범이라고 부른다. 특히 ‘법’은 국가 권력에 의해 강제되는 사회규범을 말한다. 그런데 바로 이 법이 생명이 어리다고, 약하다고, 장애가 있다고, 성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원치 않는다고 죽일 수 있도록 허가한다면? 우리는 그저 침묵해야 할까? 낙태 허용 조항을 포함한 모자보건법 제14조의 개정 혹은 폐지는 가톨릭교회의 숙원이다. 그러나 45년째 낙태 금지와 낙태 허용을 외치는 목소리들은 팽팽히 맞서고 있다. ■ 45년째 낙태 허용 조항 유지 세계 각국에서는 기본적으로 낙태 금지를 위해 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인구 증가와 식량 부족, 여성 권리 신장 등을 이유로 낙태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나라들이 늘어났다. 또 태아를 인간으로 보는 시점과 모체의 건강 보호라는 입장에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추가되면서 법적 허용뿐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움직임도 거세게 이어져왔다. 한국에서는 태아를 인간으로 여기는 전통적 시각에 힘입어 낙태가 흔하게 발생하진 않았다. 즉 법으로까지 규제해야할 필요성이 없었다. 이후 일본 형법의 영향을 받아 1953년엔 형법으로 ‘낙태죄’를 규정하게 됐다. 현재 우리나라 형법 제269조와 270조는 낙태죄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1960~70년대 가족계획은 산아제한에 중점을 두고 진행돼 낙태를 공공연하게 부추겼다. ‘낙태죄’를 사실상 사문화시킨 것이다. 급기야 정부는 1973년 모자보건법을 제정하면서 낙태 허용 사유를 정했다. ‘낙태죄’로 처벌받아야 하는 범위를 제한하는 법적 완화조치였다. 이후로도 정부는 수차례에 걸쳐 낙태 허용 범위를 확대해 이른바 ‘낙태죄’를 없애는 법 개정을 시도했지만, 가톨릭교회를 비롯한 종교계의 반대로 확대 개정은 하지 못했다. ‘모자보건법’은 조건에 따라 낙태를 허용할 뿐 아니라 반생명적인 시술 등도 지원하는 독소조항을 포함한다. 모자보건법 제14조 1항은 ▲본인이나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 질환 또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한 임신 ▲혈족 또는 인척 간 임신 ▲모체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 등일 때, 24주 이내 태아에 대한 ‘인공임신중절수술’ 즉 낙태를 허용한다. 여성이 부득이한 사유로 배우자의 동의를 받을 수 없을 때는 본인의 의지로 낙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도 바로 이 조항이다. 가톨릭교회는 이 법의 제정 이전부터 이 법의 부당성과 역기능을 밝히고, 제정 반대를 비롯해 지속적인 개정 및 폐지 노력을 펼쳐왔다. 이후 정부는 10여 차례 법을 개정했지만, 독소조항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다만 2009년 개정 당시 임신 28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던 조항을 24주로 강화하고, 우생학적·유전학적 질환 중 치료가 가능한 혈우병 등의 질환에 대해서는 낙태를 금지하는 조항을 추가했다.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