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종교에 흥미 못 느끼는 청년들…명상 등 ‘대안적 영성’에 오히려 관심 “예수님 여전히 호감이고 힘들 땐 기도하지만….매 주일 성당에서 시간 들일 이유 되나요?”
청년들이 종교를 떠나고 있다. 한국리서치 ‘2024 종교 인식조사’에 따르면, 종교를 믿지 않는 청년이 약 70%에 이른다. 많은 청년이 ▲전통적 종교 가치관(도그마)을 그대로 수용할 수 없어서 ▲시대 감수성과 교리 사이의 괴리를 느껴서 ▲밀착된 관계가 부담스러워서 마음이 떠났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은 명상, 심리·철학적 탐구 등 대안적 영성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영적으로 목마른 그들은 왜 정작 종교 안에서는 갈증을 채우지 못할까. 청년들의 탈종교 현상을 분석하고, 그들이 종교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에 귀 기울여 봤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한국교회에서 청년 신자는 가파르게 줄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 통계」를 따르면, 20대 청년 신자는 2015년 77만1251명(전체 신자 13.6%), 2019년 78만9368명(전체 신자 13.3%), 2023년 61만5668명(전체 신자 10.3%)까지 줄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신자 수는 물론 전체 신자 중 비율까지 떨어진 것이다.
청년들의 탈종교 현상은 천주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의 ‘한국기독교분석리포트’에 따르면, 교회 출석자 중 20대의 비중은 2017년 17%에 달했으나 2023년 6%로 줄었다.
이는 청년들이 종교에서 유의미한 효능감을 얻지 못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2023년 진행한 ‘기독청년 인식조사: 가치관, 마음, 신앙’ 조사에서 응답자 청년들은 교회를 떠났거나 떠나고 싶은 이유를 ▲매주 교회 다니는 게 부담스러워서 ▲신앙이 나의 삶에 도움 되지 않아서 ▲신앙심이 사라지거나 회의가 생겨서 등으로 밝혔다. 주일미사 참례 등 의무에 부담을 느끼는 천주교 냉담 청년들도 공감하는 내용이다.
독실한 가정에서 유아세례를 받은 현아(가명·30·안젤라) 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냉담 중이다. 초등학생 때는 첫영성체 교리 수업에서 기도문 암기로 늘 1등, 중학생 때 전례 봉사도 했던 현아 씨는 이제 고해성사를 보는 법도 가물가물하다.
“예수님은 여전히 호감이고 힘들 때 기도도 한다”는 현아 씨는 “그렇다고 그게 내가 의무감으로 매 주일 성당에서 시간을 ‘소비’할 이유가 되느냐”고 반문했다.
“어떤 종교의식이든 일회성 행사처럼만 다가와요. 생존과 직결된 삶에 그것이 어떤 힘을 주는지도 체감한 적 없고요. 그래서 교회도 절도 다닐 생각 없어요.”
#이성적사고 #시대감수성 #수평적관계
기성세대보다 높은 교육 수준에 힘입어 청년들은 신앙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무조건 따르기보다 스스로 탐구·확립하는 걸 선호한다. 인터넷·SNS가 능숙해 정보 접근성이 높아 다양한 해석, 비판적 견해를 두루 접해오기도 했다. 그래서 종교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여기지 않고, 믿더라도 ‘무엇이 믿을 만한지’ 짚고 넘어간다.
“‘아내는 주님께 순종하듯이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에페 5,22) 이런 표현이 성경에 나오면 합리적으로 해석해 주는 신부님도 있지만, 사실 설명이 부족할 때가 많아요.”
바이오 전공자 박가은(테클라·25·서울대교구 양천본당) 씨는 “우리는 빅뱅 이론과 진화론의 편을 드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개입과 창조를 강조하는 교회의 ‘진심’을 이해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본당 주일학교 교사로 6년간 활동한 박 씨는 “그런데 가르침은 거의 우리에게 ‘한쪽만 맞다’거나 ‘그냥 교회 입장이 그렇다’는 식으로 전달된다”고 토로했다.
청년들은 시대 감수성에도 깊이 공감한다.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이 성(젠더)평등, 성소수자 인권, 생명윤리 등 사회적 흐름과 충돌할 때 교회에 선뜻 동의하지 않는다.
인천교구 청년성서모임 봉사자 정구훈(이사악·37·인천교구 부평1동본당) 씨는 “도그마는 옳고 그름보다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의 문제인데, 어른들은 이를 현대적 감수성과 조화롭게 풀어가는 방법을 고민하기보다 순종부터 바라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래서 청년들은 ‘수평적 관계’를 좇는다. 끈끈한 친교가 아니라, 동등한 눈높이에서 서로 존중하며, 각자가 만난 예수님을 나누고 발견하면서 서로 인격적 관심을 기울이는 관계다.
“친교를 핑계 삼아 지나친 ‘함께’(공동체주의)를 중시하는 건 맞지 않다고 봐요. 그 ‘함께’의 범주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소외감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저 고인 물 같이 돼서 아무 의미 없는 만남 시간이 될 수 있겠죠.”
철학·종교 전공자 성유빈(에디트 슈타인·인천교구 마전동본당) 씨는 “청년이라는 거대한 덩어리보다는 청춘 개개인을 봐야 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이어 “친교의 본질은 구렁에 빠진 친구가 있으면 올라올 수 있게 손을 내밀고,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함께 기도할 수 있는 ‘문턱 낮은 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너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
현아 씨는 요가 강사다. “내적 균형이 최우선 가치”라는 그에게 명상은 일상이다. 오늘 아침도 현아 씨는 명상 도구인 싱잉볼(Singing bowl) 여러 개로 자신을 에워싸고,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은 채 침묵하며, 타종 소리를 매개 삼아 내면세계로 침잠했다. 그는 “어떤 사람이 종교를 떠났다고 영성까지 잃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종교가 없었거나 종교를 떠난 많은 청년이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Spiritual But Not Religious, 이하 SBNR) 활동에 심취한다. 청년들의 탈종교가 반드시 신앙심 부족이나 종교생활 거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청년들의 많은 수는 영적 갈망을 지니고 있다. 미국 설문조사기관 퓨리서치에 따르면, 자신이 ‘종교적이지는 않지만 영적’이라고 생각하는 청년세대(18~29세)는 2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교를 떠난 청년 4명 중 1명이 스스로 영적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경향은 신자 청년들에게서 더욱 두드러진다. 본지가 서울대교구 옥수동본당 부주임 김강룡(프란치스코) 신부와 ‘스레드’(Threads)를 통해 청년 신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에서도 응답한 청년의 79%가 영신수련과 같은 기도·묵상 피정에 참여해 보고 싶다고 답했다.
정규현 신부(마르티노·36·서울대교구·서강대 사회학과 박사 수료)는 “더 충만한 삶의 의미를 모색하고 내적 진정성에 귀 기울이며 대안적 가치를 추구하는 청년도 많아지고 있다”며 “세대론에 빠져 청년들의 세태를 비판하고 쇄신을 외면했던 것은 아닐지 반성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박주현 기자 ogoy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