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안에서 하느님 뜻 실천해온 참 그리스도인” 소년 쁘레시디움 활동하며 복사 도맡아 인권 변호사 시절 부산 정평위 활동 참여 ‘신귀영 일가 간첩 누명’ 변호 나서는 등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주님 사랑 실천
5월 10일 제19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인권변호사,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친구이자 ‘정치적 동반자’로 익히 알려져 왔다. 하지만 그를 가까이서 지켜본 이라면 ‘참 신앙인’이라는 말을 덧붙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어머니 ‘기도(발)’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대통령선거에 앞서 3월 19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당내 경선 후보 토론회 때 내놓은 말이다. 스스로도 주위에 어머니가 물려준 신앙이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음을 수없이 고백하듯 밝혀왔다.1953년 1월 경남 거제에서 2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문 대통령은 어머니 강한옥(데레사·90·부산 신선본당)씨 권면으로 초등학교 3학년 때이던 1961년 신앙의 길에 발을 들여놓는다. 세례명 ‘티모테오’도 어머니 강씨가 직접 정한 것이다. ‘하느님을 공경하는 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그의 세례명에는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다. 어머니의 깊은 관심과 인도 속에 신앙생활에 맛을 들여가던 소년 문재인은 초등학교 5~6학년시절 본당에서 소년 쁘레시디움 활동을 하며 미사 때마다 복사 서는 일을 즐거움으로 알았다. 성당 마당에서 뛰놀던 이때의 추억은 신앙인 문재인이 하느님 나라를 향한 길을 걸어가는 데 원체험이 됐다.
어머니 강한옥(데레사)씨는 “특별한 게 없는, 우리 같은 보통 사람. 그냥 보통 사람이지”라고 오랜 세월 지켜봐 온 자신의 아들을 증언한다. 아들이 진정으로 하느님을 알고 ‘주님을 공경하는’ 보통 사람, 보통 신앙인의 모습을 잃지 않길 바라는 노모의 기도가 오늘의 그를 만든 게 분명해 보였다. 입시에 매달려야 했던 중학교 진학과 함께 잠시 신앙에서 멀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어머니가 그를 붙들어 세웠다. ‘하느님 공경’의 길이 어떤 길인지 잘 아는 어머니였다. 본당에서 레지오 단장, 구역장, 사목협의회 부회장, 신협 이사 등으로 활동하며 교회일이라면 딴일 제쳐놓고 나서던 어머니는 아들 재인의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삶의 푯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되뇌게 했다. 문재인·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로 두 사람을 이어준 송기인 신부(부산교구 원로사목자)는 “당시 문 변호사는 이미 신앙적으로 잘 갖춰진 그리스도인이었다.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웬만한 성직자보다 나은 참 신앙인”이라고도 평했다. 그는 “예수님처럼, 발걸음 하는 데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며 신앙인 문재인의 가려져있던 면모를 드러냈다. 학생운동 속에서 정의를 찾으며 주님 진리에 목말라하던 청년 그리스도인 문재인이 다시 신앙의 열정을 불사르기 시작한 것은 사법고시(1980. 제22회)에 합격하고 1982년 부산에서 고(故) 노무현 대통령과 합동법률사무소를 열면서부터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 ‘인권 변호사’라는 말조차 낯설던 시절 부산·울산·경남 지역 전체에 인권 변호사라곤 그를 포함해 고작 서너 명이 전부였다. 함께 일하던 노무현, 김광일 변호사 등이 차례로 정치무대로 떠나자 끝까지 가난한 이들 곁을 지킨 이도 그였다.청년 문재인은 1988년 처음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이하 부산 정평위) 위원으로 위촉돼 2000년대 들어 정치무대로 떠날 때까지 신앙인으로서 열정적인 활동을 펼친다. 이 시기 문 변호사는 부산 정평위 산하 법률인권팀(팀장 김현영 신부) 소속으로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서는 일을 마다치 않았다.
1988년 11월 14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이하 천정연)이 창립되고 천정연 산하에 인권소위원회(소위원장 하경철 변호사, 지금의 천주교 인권위원회) 활동이 시작되자 누구보다 앞장선 이도 그였다.한창 부산 정평위 위원으로 활동하던 1994년, 외항선원이던 신귀영씨와 친척들이 불법 감금과 고문 끝에 간첩으로 몰렸다가 29년 만에 무죄가 확정된 ‘신귀영 일가 간첩조작사건’을 빛 아래 드러낸 것도 문 변호사의 정의감이 낳은 결실이었다. ‘간첩사건’이라면 누구나 꺼리던 시절, 그는 자비를 털어 일본을 오가며 신씨 일가가 쓴 누명을 벗기는 일에 앞장섰다. 누가 부탁한 일도, 그렇다고 누가 알아주는 일도 아니었다. 그저 그 길이 정의의 길이라서 나선 것뿐이었다.
훗날 신귀영(81)씨는 “자기 일도 아닌데…. 그는 실망시키지 않고 계속 싸워주었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그 덕분에 참 안도감이 들었고,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말했다. 진리와 정의를 향한 열정이 한 사람, 나아가 그에 딸린 수백 명의 생명을 살린 것이다. 1996년에는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는 페스카마호 선상 살인 사건의 주범들을 변호했다. 아무리 흉악범이라 해도 하느님이 주신 인권은 보장받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부산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 부산지부와 경남지부장 등을 역임하며 교회 안팎에서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데 앞장 선 그가 부산지역 법조인들을 모아 성서모임을 이끈 일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이 성서모임에는 동료 변호사들뿐 아니라 지역 판사와 검사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활동을 함께한 김현영 신부(부산교구 김해이주노동사목센터)는 “문재인 대통령은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자신의 삶에 받아들인 참 신앙인”이라고 말했다. 예수님을 알기에, 그분이 명하신 사랑의 길을 충실히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의 길에 들어선 문재인 의원이 지난 2014년 8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10일간 단식한 일은 그가 걸어가고자 하는 삶의 지향을 잘 보여준다. 세속의 평보다는 주님이 보여주신 길을 먼저 생각하는 삶이다. 2015년에는 주교회의가 앞장서 온 ‘사형폐지에 관한 특별법안’을 공동 발의하는가 하면, 한국 평협이 추진하고 있는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에 동참해 힘을 보태기도 했다. 2016년 고(故) 백남기(임마누엘) 농민 장례미사에 참석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하며 내세운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 금지·핵발전소 백지화 ▲탈핵국가 로드맵 제시 ▲호스피스·완화돌봄 정책 확산을 위한 지자체의 기반시설 확충 ▲사형제도 폐지 등의 공약은 그의 신앙 역정을 볼 때 그 어느 때보다 믿음이 간다.서상덕 기자 sa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