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8일 서품된 대구대교구 서정덕 주교 인터뷰

김보섭 기자
입력일 2018-04-16 수정일 2018-04-16 발행일 1994-04-17 제 1901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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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들의 영적 성숙에 진력할 터”

“기탄 없는 대화로 업무 추진
교구장 보필 최선 다할 생각”
『당신의 종으로 불러주신 하느님의 뜻에 응답하고 주교로 임명해 주신 교황님께 순명했을 뿐입니다. 능력이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교구장님 뜻을 받들어 보필하는 데 전심전력하고자 합니다』.

대구교구 설정 83주년 기념일인 4월 8일 오후 2시 대구 성 김대건 기념관에서 대구대교구 보좌주교로 서품된 서정덕(알렉산델ㆍ57) 주교는 예의 그 온화한 미소와 함께 주교 서품 소감을 밝혔다.

서품식 이후 치뤄진 축하식에서 교황대사 블라이티스 대주교를 비롯한 내빈의 축사에 응답『모든 교구민을 비롯한 사제 수도자들과 긍정적이고 기탄 없이 대화하고 조언을 받아들여 교구 발전과 공동체의 발전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밝힌 서 주교는 그외 부족한 것은 미천하고 보잘 것 없는 나를 당신께서 채워 주시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왔는가」란 좌우명으로 항상 사제로서의 삶을 반성、최선을 다해 신자들을 사목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온 다정다감하고 온화한 인품의 서 주교는 항상 끝임 없이 기도하면서 진지한 자세로 성무에 임하겠다는 각오를 피력했다.

『벗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고귀한 사랑은 없다』(요한 15、13)는 성서 구절을 가장 좋아한다는 서 주교는『벗인 당신의 종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그리스도의 헌신적인 사랑을 항상 염두에 두고 현 시대 그리스도의 벗인 신자들의 영적 성숙과 성화를 위해 보잘 것 없으나 전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서 주교의 마음은 문장에 새겨진 사목 지표인「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Sanctificetur Nomen Tuum)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농사를 지으면서 대구 비산본당 평협 회장을 역임한 서 주교의 부친 고 서타암 옹은 머슴을 부릴 정도의 여우에도 불구하고 노동의 신성함을 가르쳐 주기 위해 자식들에게 농사일을 시켜、서 주교도 모심기 타작 등 대부분의 농사일을 몸소 경험했다고 한다.

자연과 함께 생활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들려준 서 주교는『소나무와 감나무가 우거진 어린 시절의 경험이 긍정적이며 각박하지 않는 평화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여유를 제공한 것 같다』고 회상했다. 항상 사제로서의 기쁨과 긍지를 지니며 생활해온 것으로 알려진 서 주교는『주님과 교회의 뜻을 따라 주님의 종이요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새로난 만큼 주님께서 지워준 나의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를 것』이라면서 교구장 이문희 대주교를 비롯한 선배 주교들의 지도 편달을 요청했다.

1937년 9월 3일 대구시 서구 비산동 642번지에서 3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서 주교는 대구 달서국민학교와 대구 공업중학교를 거쳐 1956년 서울 성신고등학교(소신학교)를 졸업했다. 1961년 가톨릭대학을 졸업한 서 주교는 1962년 1월 6일 대구 계산성당에서 사제로 서품됐다.

1962년 1월 15일부터 1년 6개월간 삼덕본당 수석보좌를 역임한 서 주교는 1962년부터 1987년까지 만 23년간 군 사목에 헌신했으며 한국 가톨릭 교회 최초로 육군본부 군종감에 취임、타 종파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됐던 한국 가톨릭의 군 사목에 활력소를 제공했다.

1987년 전역한 서 주교는 대구 남산본당 주임을 거쳐 1991년 4월 10일부터 대구대교구 사무처장으로 일해왔으며 지난 3월 4일 교황청으로부터 대구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됐다.

김보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