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보좌주교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니 나 자신에 대한 부족함을 더욱 뼈 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보좌주교로 임명된 만큼 교회와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여 성심성의껏 교구장을 보필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구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된 서정덕 주교는 임명 소식을 듣고 몇 번이나 사양했으나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라는 교황 대사관의 거듭된 권고로 주교 임명을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했다.
교구장에 대한 순명정신이 투철한 서 주교는 군종신부로 10년간 재임할 때 전임 교구장인 고 서정길 대주교의 선교의 불모지인 군을 위해 헌신하라는 한마디의 명을 받들어 만 23년여 동안 군사목을 위해 헌신해왔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왔는가"를 사목 모토로 살아온 서 주교는 하느님과 교회와 신자들에게 헌신하는 그리스도의 종의 신분을 항상 견지하고 있다.
끊임없이 기도하고 노력하는 서 주교는 "사제로서 교회에 좋은 표양을 보여주고 신자들의 신심을 두텁게 하고 따뜻하게 불을 지펴주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서정덕 주교(58세·알렐산델)는 1937년 9월 3일 대구 비산본당 평협 회장을 역임한 바 있는 고 서타암(발라바) 옹과 조일순(아나다시아) 여사 사이의 3남 3녀 중 장남으로 대구 비산동에서 출생했다.
대구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한 서 주교는 1956년 소신학교인 서울 성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2년 가톨릭대학을 졸업한 후 사제로 서품됐으며 1년 6개월간 대구 삼덕본당 수석보좌를 역임한 후 곧바로 군사목에 뛰어들어섰다.
서정덕 주교와 함께 사목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성직자들은 한결같이 서 주교의 교회를 위한 헌신적인 자세와 매사에 전심전력하는 성실함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신학생 시절부터 성무부장을 역임할 정도로 사제로서의 신심이 돈독한 서 주교의 항상 끊임없이 기도하는 성실한 자세는 후배 사제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20여 년 전 삼덕본당 사목 시절 늦도록 레지오 지도를 마친 후 피곤함에도 아랑곳 않고 난로 곁에서 성무일도를 드리다 깜박 졸아 이마를 덴 일화는 항상 깨어 기도하려는 사제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서 주교의 신심을 보여준다. 사목생활의 대부분인 만 23년간을 군종사목을 위해 헌신한 서 주교는 1963년 육군 중위로 임관, 1980년 대령으로 진급했으며 월남전이 한창이던 69년 7월부터 70년 9월까지 월남전에 참전했다.
추진력과 조직력을 갖춘 행정통으로 알려진 서 주교는 1957년부터 1977년까지 군종교구의 전신인 군종신부단의 초대 사무처장과 사목국장을 역임하면서 군종교구의 기반을 닦는 데 큰 역량을 발휘했다.
1985년 5월 7일 한국 가톨릭 사상 최초로 제19대 육군본부 군종감으로 취임한 서 주교는 타 종파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됐던 한국 가톨릭의 군사목에 힘과 활력을 불어넣었다.
1987년 5월 전역한 서 주교는 대구 남산 주임을 거쳐 1991년 4월 10일부터 대구대교구 사무처장으로 일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