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예비역 육군 대장 김영식 장군

정리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8-10-09 수정일 2018-10-11 발행일 2018-10-14 제 3115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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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주신 ‘교사 DNA’ 봉사하며 씁니다”
‘야전 전문가’로 40년 넘는 군생활 ‘책 읽는 군인’으로 문무 겸비 
군인들 대상 특강 다니며 ‘재능기부’
「장군의 전역사」에 강의 내용 집약 
기업 강의료·인세도 군인 격려금으로
여성 전교회장이던 할머니와 약현성당 사무장이던 아버지 등 대대로 내려온 신앙에 큰 영향받아
세례 받는 부하들 대부 자처하며 군복음화 위한 일에도 힘 보태

1만4803일. 40년 6개월 11일의 날 수다. 지난해 8월 9일 육군 제1야전군사령관을 끝으로 전역한 김영식(시몬·60) 예비역 육군 대장은 1977년 육군사관학교 37기로 입교해 1981년 소위로 임관한 뒤 육군 대장으로 영예롭게 군문을 나설 때까지 평생을 군인으로 살았다.

김영식 장군은 중대장부터 사단장, 군단장, 야전군사령관 등 대부분의 지휘관 직책을 최전방 GOP에서 수행하는 보기드문 경력을 쌓아 ‘최전방 야전 전문가’로 통했다. 「손자병법」과 전쟁사에도 능통해 ‘문무(文武)를 겸전(兼全)한 장군’으로 불리기도 했다.

지난 5월에는 저서 「장군의 전역사」를 내고 작가와 특강 강사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제2의 인생을 펼쳐나가고 있기도 하다.

김 장군을 만나 그의 지나온 삶과 현재의 삶 그리고 신앙 이야기를 들었다.

◎대담: 장병일 편집국장

◎날짜: 2018년 9월 28일

◎장소: 서울 명동 우리사랑나눔센터

전역 후 특강 강사로 활동하며 제2의 인생을 펼치고 있는 김영식 장군은 “저의 장점을 살려 좋은 교육기회를 얻지 못한 병사들에게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장병일 편집국장(이하 장 국장): 지난해 8월 육군 제1야전군사령관 임무를 마치고 전역하셨습니다. 군복을 벗고 일반인으로 돌아온 지 1년이 조금 넘었는데 ‘일반인’ 생활은 어떻습니까?

▲김영식 장군(이하 김 장군): 1만4803일 동안 군생활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등학교 졸업하고 자아 생성 전에 육사에 바로 입교했습니다. 지난해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육사 37기가 박근혜 전 대통령 동생 박지만과 동기여서 장군 진급자가 많았다는 등의 얘기가 돌았고 저도 물러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을 했습니다. 전역 후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역 후 계획 중 하나가 제가 하느님께 받은 재능이 있다면 옛 부하들에게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집안 내력에 교사 DNA가 있습니다. 집안에 교사가 많았습니다. 아버지께서도 일제 때 교사셨고 제 큰형도 교사로 생활하며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동생들을 뒷받침했습니다. 저 역시 현역 시절 보병학교에서 교관을 했고 합동군사대학교 총장도 맡았습니다. 전역 후에는 저의 장점을 살려 좋은 교육기회를 얻지 못한 병사들에게 재능기부를 하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전역하고 1년1개월이 금방 지났습니다. 그 기간에 공식 강연만 60여 회 했으니까 1주일에 한두 번은 매주 강연을 하고 있네요.

-장 국장: 강연은 주로 어떤 주제로 하고 계십니까.

▲김 장군: 첫째, 군인의 정체성 확립에 두고 있습니다. 군인 정체성이 미확립된 사관생도, 장교 후보생, 신임 소위들에게는 ‘군인이란 누구인가’에 대해 강연합니다.

둘째, 야전부대 군인들에게 독립적인 작전능력을 키우라는 강연을 합니다. 제가 오랜 세월 야전 생활을 하면서 생각했던 것이지만, 우리 군이 미래에 전시작전권을 회수하면 그후에는 미군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작전하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창의적 사고를 가진 군인들이 필요합니다. ‘창의적 군인되기 프로젝트’인데 군인들에게 독서, 글쓰기, 사색과 토론을 잘하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군인들을 위한 강연은 제가 재능기부로 하는 것이고 강연료를 받지 않습니다.

셋째는 ‘명장의 조건’을 주제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합니다. ‘돈’을 벌 목적으로 하는 강연입니다. 본래 리더십은 군에서 태동된 것인데 군인의 리더십을 사람들이 잘 모릅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장군 7명의 리더십을 설명하고 있고 충실한 강연 준비를 위해 공부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부대 강연을 마치고 후배 장병들에게 격려금을 주기 위해 수입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민간 회사에서 강의하며 강의료를 받는 것입니다. 책을 쓰려고 생각 중에 가까운 친구가 “강의하는 데는 저서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해 「장군의 전역사」를 냈습니다. 「장군의 전역사」에는 세 가지 범주의 강의 내용이 모두 녹아 있습니다. 군대에서 있었던 얘기로 강의를 하면 청중들 반응이 좋습니다. 한 대기업에서 강의를 하고 나니 “김 장군님 밑에서 군생활을 다시 하고 싶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장 국장: 강연을 하시면서 보람도 느끼시겠습니다.

▲김 장군: 제가 쌓은 경험과 지식은 국가가 저한테 준 것입니다. 군생활 중 독일, 미국에서도 지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 모두 국가가 해 준 것이지요. 국가가 저를 대장까지 진급시키며 저에게 투자한 것을 전역 후에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재능기부, ‘리펀드’(Refund)를 결심했습니다.

전역식을 마치고 다과회에서 내 삶을 공표했습니다. 「장군의 전역사」에서 ‘하지 말아야 할 5가지’(五勿)와 ‘해야 할 5가지’(五行)를 약속했고 자연스런 결론은 재능기부였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재능을 봉사하며 쓰자 싶었습니다. 전방 부대에 다니며 강연을 하고 제 책을 선물하고, 후배 군인들에게 격려금을 주는 저의 행적을 후배들도 따라 올 것이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장 국장: 김 장군님은 천주교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재능기부가 신앙과도 관련이 있을까요.

▲김 장군: 저는 유아세례를 받았는데 태어난 곳이 서울 중림동약현성당 경내입니다. 일제 때 교사를 했던 아버지께서 해방 후 약현성당 사무장을 하실 때 성당 사택에서 태어났습니다. 할머니는 만주에서 여성 전교회장을 하셨고 아내는 결혼할 때 할머니의 권유로 명동성당에서 예비신자 교리를 받고 베로니카로 세례 받았습니다.

앞으로 10년은 강연료와 인세를 모아 전방 부대를 다니며 무료 강연을 계속 하려고 합니다. 제가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은 웬만한 후배들은 다 압니다. “천주교 신자라서 다르네”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장 국장: 군인이 되겠다는 결심은 언제 하셨습니까.

▲김 장군: 군인이 되려는 목표나 정체성이 있어서 육사에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께서 자식들을 키우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장한 어머니상’을 세 번이나 받으셨죠. 제가 대입시를 앞두고 있을 때 작은형과 누나가 대학생이었고 저는 서울대를 목표로 하고 있었지만 저까지 대학에 가면 집안에 대학생이 셋이 돼서 결국 육사에 갔습니다. 그 당시에는 집안이 어려운 수재들이 육사에 많이 갔고 육사가 엘리트를 키워서 군을 지금 수준으로 올려놓았다고 봅니다.

육사에 갔더니 제 생각과 육사 교육이념이 맞았습니다. 생도 때 동기 중에 손꼽혔고 소령 때 이미 37기 중 육군참모총장 감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육사 후배들이 제가 참모총장 못 된 것을 아쉬워합니다.

-장 국장: 김 장군님은 ‘책 읽는 군인’이었습니다. 풍부한 독서가 「장군의 전역사」를 내는 단초가 된 것 같습니다.

▲김 장군: 어릴 적부터 가톨릭 인물을 다룬 동화책을 읽었던 것이 독서습관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큰형이 교사여서 형에게서 책을 받아 읽곤 하면서 독서를 통해 사색을 많이 하게 된다는 체험을 했습니다.

요즘 야전에서 강연할 때 장병들에게 헨리 데이빗 소로의 「월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꼭 읽어보라고 추천합니다. 「월든」은 느리게 사는 삶도 좋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저에게는 노자의 「도덕경」도 평생의 필독서입니다. 젊은이들이 자기가 평생 읽을 책을 꼭 갖기를 바랍니다.

-장 국장: 김 장군께서는 「장군의 전역사」를 시작하며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첫 구절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를 인용했습니다. 행복한 군인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김 장군: 저는 행복한 군인은 자기가 생각하고 추구하는 바를 반대급부를 바라지 않고 꾸준하게 해 나가는 사람이라 정의합니다. 군인하면 계급을 떠올립니다. 진급하려고 군생활 하느냐고 부하들에게 질문을 던지곤 했고 “군생활 마칠 때 행복한 사람은 합참의장밖에 없다. 진급은 결과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진급이 인생의 목적이면 행복한 군인이 아닙니다. 자기가 선택한 길에 가치를 두면서 인생의 목적을 찾는 군인이 행복한 군인입니다.

자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면 좋은 직업이라 여기는데 군인의 길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가족에게는 미안합니다. 이사를 34번이나 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 부하들로부터의 존경에 가치를 둬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이 필요합니다. 신앙이 있으면 진급을 못하더라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제가 중령에서 대령 진급에 떨어졌을 때는 괴로웠지만 돌이켜 보면 하느님의 축복이었습니다. 진급에 실패한 후배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장 국장: 김 장군님과 신앙의 관계를 설명해 주십시오.

▲김 장군: 저는 어디 가서 지휘관을 해도 군인은 어떤 종교든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참호 속에서는 무신론자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죽고 살지 모르는 순간에는 신앙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언제 참호 속에 있을지 모르는 군인은 무신론자가 될 수 없습니다. 군인은 한 쪽 어깨에 죽음을 짊어지고 있고 늘 명예롭게 죽을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군인은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휘관인 내가 스스로 신앙적으로 모범을 보이려고 노력했습니다. 임지를 옮겨 이사 갈 때는 성당에 먼저 들러 신부님께 신고부터 했습니다. 사단장이 되고부터는 매일 아침마다 출근 전 성당에서 성체조배를 하고 교회 가서 기도하고 법당 가서도 같은 기도를 하며 1시간 동안 3개 종파 ‘성지순례’를 돌았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365일 꼬박 ‘성지순례’를 하며 부하들에게 지휘관이 종교에 대한 편견이 없구나라는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제가 관용과 배려심, 보편성을 지닌 천주교 신자여서 ‘성지순례’를 할 수 있었고 저를 따라서 ‘성지순례’를 하는 후배 현역 사단장도 있습니다.

석가탄신일에는 간부들에게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법당에 연등을 달라고 권장했습니다. 연등 구입비가 장병들 간식비로 쓰였습니다.

-장 국장: 김 장군께서 군복음화에 적지 않게 기여하셨을 것 같습니다.

▲김 장군: 대부도 많이 섰습니다. 장군이 되면 전속부관이 생기는데 계급이 중위, 대위입니다. 전속부관은 천주교 신자가 되겠다는 인원을 뽑았고 제가 전부 대부를 섰습니다. 제 큰아들이 미카엘, 작은아들이 가브리엘이어서 부관들도 세례명을 대천사로 지어줬고 다른 대자들은 다니엘, 사무엘처럼 ‘엘’자 돌림으로 지었습니다. 군성당에서 미사 끝나고 장병들에게 전례 의미와 미사 드리는 자세에 대해 가르치면서 알짜배기 신자를 만들려고 노력한 적도 있습니다.

신자이면서 냉담하는 부하들은 회두하도록 ‘푸시’했고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한국에 오셨을 때는 휴가를 내고 광화문에 가서 미사를 드렸습니다.

-장 국장: 변화하는 남북관계와 군사 환경에 대한 입장도 궁금합니다.

▲김 장군: 남북 평화 무드를 환영합니다. 남북 관계에서 대화는 필요하고 하나의 축이지만 한반도의 안보가 무너지지 않아야 합니다. 김정은을 믿더라도 선의로만 받아들이는 것은 곤란하다고 봅니다. GP 철수 논의 등에서도 균형 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장 국장: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십시오.

▲김 장군: 하고픈 몇 가지가 있습니다. 군사 전문서적 번역하는 작업을 하고 있고 군인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을 선정해 저자소개와 서평을 적는 것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고대 병서에서 현대 군사 명저까지 아우르는 책도 집필해 보고 싶습니다. 광운대에서 방위사업학과 국방경영 전공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는데 젊은 사람들과 얘기하고 세상 사는 것을 배우려는 뜻이 있습니다.

꼭 이루고 싶은 꿈은 천주교 대안학교에서 교장을 하는 것입니다. 교육자 집안이니까 교장의 꿈을 꼭 이뤘으면 합니다.

김영식 예비역 육군 대장(왼쪽)과 본지 장병일 편집국장이 9월 28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 앞을 거닐며 대담하고 있다.

사단장 시절 병사들의 발을 닦아 주는 김영식 장군. 김영식 장군 제공

정리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