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춘천 순교자 묘역 참 주인 / 김성훈

김성훈 (스테파노) 수필가
입력일 2018-11-13 수정일 2018-11-13 발행일 2018-11-18 제 312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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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못난 ‘꼴찌 순례자’가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청량리역에서 듣기도 좋은 ‘청춘’이라는 이름의 열차를 타고 강원도 춘천 죽림동주교좌성당을 찾는 이유는, 방문할 때마다 알 수 없는 새로운 거룩함과 영광스러움을 느껴서다.

또 성당에 들어서려는 순간 성당 입구 높은 곳에서 두 팔 크게 벌리시고 마치 “꼴찌야, 어서 오거라”하시며 이 못난 꼴찌 순례자를 반겨 주시는 예수님 때문이다.

성당 뒤 햇살이 너무 좋은 자리에 조용히 자리하고 계신 순교자 묘역이 그다음 이유다. 순교자 묘역은 성당 입구의 예수님처럼 항상 이 꼴찌 순례자를 받아주시며 포근한 다독임을 주신다. 오늘도 이곳이 나의 본당이라도 된 듯 성당 이곳 저곳 당당하게 돌아다니며 큰 즐거움 속으로 빠져 들어본다.

예수님 뒤에서 바라본 성당 아래 모든 세상이 마치 나의 세상이나 된 듯, 감히 예수님처럼 두 팔을 크게 벌리고 세상을 내 품 안에 담아보려는 행동이 많이 어리석다. 내 스스로 이렇게 미안해하고 스스로를 야단치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동안 어느새 다가온 미사 시간. 조금 전까지의 어리석음은 모두 잊고 이곳 교우들에게 꼴찌 티를 내기가 싫어, 나의 본당 미사 때 보다 더 열심히 마음을 모으고 더 간절하게 기도한다.

미사를 봉헌하면서 마지막 파견 성가까지 잘 마치니 성당 앞 예수님의 뒤를 이어 이 꼴찌를 기다리고 계신 순교자 묘역으로 조심스레 자국걸음을 옮긴다. ‘손 프란치스코’, ‘김 베네딕토’, ‘이 티모테오’ 등 모든 순교자들의 이름을 되새기며 기도할 수는 없지만, 몇몇 순교자들의 이름은 되새기며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분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감히 순례자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편하게 거룩한 평화의 땅을 찾아다니면서 기도를 올릴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이끄심이시니, 하느님에게 먼저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이렇게 감사의 기도까지 더해지니 기도가 길어졌다. 그래도 나는 아직 꼴찌가 맞으니 이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기도만 하는 것도 ‘참 잘 했어요’다. 이렇게 스스로 위로하며 가을의 따가운 햇살 피한 좋은 자리에 나를 맡기고 손에 묵주 쥐고 묵주기도를 시작한다.

아직 묵주기도 5단을 다 마치지 못했는데 나이 탓인가. 걸음걸이도, 허리의 움직임도 그리 편하지만은 않아 보이는 한 형제님이 나의 기도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많이 불편해 보이는 몸짓으로 다가선 묘역 앞에서 성호를 긋고 기도를 하신다. 늦가을이지만 햇살은 아직 뜨거운데도, 조금도 피하지 않고 비석 하나하나에 빠뜨림도 없이 성호와 기도를 이어가신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부터인가 비석 하나하나 내려 앉아있는 먼지를 닦기 시작하신다. 햇살을 피해 기도하고 있던 나, 그리고 나와 그리 많이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비석을 닦고 계시는 그 형제님.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는 더 이상 기도를 이어가지 못했고, 그 형제님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 가 없었다.

순교자를 향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오고 그 우러남을 몸으로 바로 실천하시는 저 형제님의 모습. 그것이야말로 참된 신앙으로 살아가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을 햇볕을 따갑다고 피하면서 드리는 나의 기도는, ‘건성의 기도’였다.

그 형제님이 순교자들의 비석 모두 닦으시고 기도를 끝내시고 날 향해 가벼운 목례와 함께 내 마음 밖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나는 내 깊은 곳에 숨어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성훈 (스테파노)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