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캄푸치아가 공상화 되던 당시 캄푸치아의제1종교는 불교이고 제2종교는 이슬람교이며 그 다음에 개신교와 가톨릭을 포함한소수의 크리스찬 신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폴포트가 이끄는 크메르루즈 정부는 철저한 종교탄압을 시작하면서 무수한 종교인들을 학살했다.
「카티쟈」라는 이름의 이슬람교도 미망인이 증언하는 종교인 학살의 전형적인 사례를 소개하고자한다.
현재 40세 정도의 이 여인은 폴포트 치하에서 어느 날 갑자기 18명의 전가족 중 14명이 참변을 당하고4명만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게 된 얘기를 전하고 있다.
이 여인이 살고 있던「콤퐁트라락」이라는 마을을 대대로 이슬람교도들이 함께 모여 사는 평화스러운 곳이었다.
그러나 종교탄압의 손길이 차츰 이 마을에까지 미치면서 예배행위가 금지되고 심지어는 이슬람언어의 사용도 금지되면서 공포분위기가 엄습하였다. 이에 자연히 불만을 품은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다. 이 여인의 시동생인「유솝」은 당시 27세로「불만죄」의 명목으로 붙잡히는 몸이 된다. 그에게는 음식은 물론 한 방울의 물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이를 안타까워하던「유솝」의 형인「힘헤이」가 목말라 죽어가는 동생에게 마지막 물 한 모금을 주기위해 우물물을 떠나 주려다 감시원에게 발각이 된다. 즉시 붙잡혀 망고마누에 묶인다. 그리고는 주위에 밀짚을 쌓아 불을 질러 생화장을 당하게 된다. 이를 지켜보던 부인이 달려가 남편을 살려달라고 애걸한다.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다.
그의 부인은 다시 복걸한다. 이에 귀찮은 듯 젊은 크메르병사는 여인의 손을 뒤로 묶어 눕히고 여인의 혀를 잡아 뺀다. 그리고는 톱니 날처럼 빳빳한 잎사귀를 가진 야자수 껍데기로 여인의 혀를 베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이어서 같은 톱니 잎사귀로 여인의 목을 베기 시작한다. 배고픔과 목마름으로 신음하며 죽어가는「유솝」과 산채로 묶여 생화장되어가는 그의 형「힘헤이」, 남편을 살리려다 생으로 목잘려가는 여인, 그를 울며 지켜보다 땅바닥에 태백이 쳐지면서 죽어가는 어린 자녀들의 처참한 모습으로 아수라장의 피바다가 되어버린다. 참극은 역서 그치지 않는다. 마침 고기잡이 나갔다 돌아오는「유솝」의 아버지를 낚아채 곤봉으로 머리를 후려쳐 즉사시킨다. 온 동네가 삽시간에 피바다와 울음바다로 변하면서 동네 전체가 하나의 도살장으로 변해버린다.
이 같은 학살의 현장은「캄푸치아」의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종교탄압은 이슬람교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기독교도와 불교도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끔찍한 인간도살이 어떻게 가능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플포트 당시 크메르루즈 병사의 일원이었던 한 젊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어렸을 때부터 정글 속에서 생활하며 게릴라 훈련 이외에는 별다른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다 특히 어린 소년들의 잔학성을 길러주기 위해 끔찍한 살상훈련을 반복 실습했다고 한다. 고양이나 쥐를 잡아 가능한 한 잔인하게 죽이는 연습에 익숙하다보니 후에 사람을 잡아 똑 같은 잔인한 방법으로 살상을 해도 죄의식이나 별다른 표정이 생길리가 없더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어린 아이들을 무참하게 악어가 득실거리는 늪에 마구 던져 버릴 수가 있었고 산채로 수십 수백명을 끈으로 엮어 집단구타와 생매장을 밥먹듯이 해치워낼 수 있었다는 가공할 얘기들이다.
혁명을 통한 새로운 건설은 철저한 파괴를 전체로 해야 한다는 모택동사상의 이념아래 인간 살육과 문화ㆍ종교의 말살 및 물질문명 제거작업이 폴포트 치하의 3년 반이라는 기간 동안이다. 과거와 단절시키기 위해서는 모든 문화유산을 파괴하고 종교를 말살해야한다는 기치아래 전국에 산재한 모든 사찰과 문화재를 불살라 버리고 불상(佛像)의 머리 부분을 모두 잘라 교량건설에 이용했다. 특히 캄푸치아 문화권에서 머리는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받고 있어 일상생활에서 머리를 건드리는 등의 행동은 불경죄로 여겨질 정도로 두부를 존중하는 민족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불상의 두부제거는 종교모독 이상의 인간 말살적 의미를 갖는다.
머리를 다 짤려 버린 부처님의 분노가 충천했더라면 폴포트의 크메르루즈 게릴라가 더 이상 지상에 존재할 수 없을 터인데라는 우분에「부처님은 자비로 충만한 분이니까요」라고 대답하는 순하디 순한 캄푸치아인들의 낙천성을 왜 서방세계는 애써 외면하고 이중의 고통과 벌을 줄려고 하는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만행과 광기를 부린 그 장본인인 폴포트가 국제재판에 회부되기는커녕 오히려 그가 이끄는 크메르루즈가 주축이 되고 있는「민주캄푸치아연정(聯政)」이 유엔의 인정을 받고 거기에다 지원까지 받고 있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는지 끝없는 질문만 던져볼 뿐이다.
「아니오」라는 답변은 일체 허용이 안 되며 우물쭈물하는 대답자세는 태형내지는 전기고문을 받을 것이라는 등의 웃지 못 할 수감자 수칙을 강요하면서 손톱빼기, 인두지지기와 독지네 고문, 물고문 등등의 갖가지 악랄한 수법으로 2만여명의 지식인ㆍ양심수ㆍ외교사절을 고문 치사시킨「투올슬렝」이라는 그 현장에서는 지금도 매년 5월 20일이면「증오의 날」행사가 치러지고 있다. 3년 반 동안(1975년 4월~1979년 1월)의 킬링필드의 악몽을 되새기는 캄푸치아인들의 넋 나간 듯한 모습에서 지나간 그들의 지옥보다 더한 고통을 읽을 수 있는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