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주님 수난 성지 주일 - 지치지 맙시다, 주님 사랑이 있으니…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원장
입력일 2023-03-28 수정일 2023-03-28 발행일 2023-04-02 제 3337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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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이사 50,4-7 / 제2독서  필리 2,6-11 / 복음  마태 26,14-27,66
은돈 서른 닢에 예수님 배반한 유다
신앙생활마저 저울질하는 우리 모습
굳센 믿음으로 하느님께 의탁하고
삶 봉헌하며 십자가 사랑 채워가길

칼 블로흐 ‘최후의 만찬’. 만찬 장소에서 빠져나오는 유다 이스카리옷(맨 오른쪽)을 묘사했다.

시린 바람 속에서 꽃을 피운 매화에 감탄한 게 어제 같은데, 어느새 앙상한 가지에 돋아난 여린 잎이 눈에 익숙합니다. 봄이네요.

글머리가 풀리지 않아 골머리를 썩이다 봄볕이 녹아든 뒤뜰을 걸었습니다. 새삼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음악을 짓는 모든 예술인에게 부러움이 솟구쳤습니다. 그들의 재주가 샘났습니다. 정확히 표현해서 질투했습니다. 그러다가 오래전, 선배 신부님과 동행했던 피정 길의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지루함을 라디오를 들으며 달래던 때, “가사가 꼭 우리 마음 같네”라는 신부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솔직히 저는 신부님의 뜬금없는 고백이 ‘어른스럽지 못한 것’ 같고 사제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약간 충격이었달까요? 가사가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정말 주님을 향한 우리의 고백이었습니다. “약속해요….” 핑클의 ‘영원한 사랑’입니다. 이후 저에게 변화가 생겼습니다. 될 수 있으면 클래식을 듣고 될 수 있으면 미술관을 찾으며 ‘애써서’ 고급문화인이 되려던 제 허세를 벗을 수 있었달까요? 부담 없이 유행가를 들었고 가사에 ‘심쿵’했으며,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듣는 연속극 대사를 마음에 품기도 했습니다. 진정한 품위는 이해함이며 너른 포용이며 하나로 어우러짐임을 다시 느꼈습니다. 오늘 약간의 민망함을 밀치고 제 마음에 꽂힌 드라마 주제가를 베껴 전합니다.

어떤 힘든 일도/ 막다른 길도 내겐 없어/ … 그대를 만나서 살아갈 의미를 찾아/ … 너를 보는 게 지친 하루에 내게 얼마나 힘이 된다는 걸 넌 알까/ 마음에 새겨진 그대가 있기에/ 몇 번이고 넘어지고 부서진다 해도 / … 모든 게 두려워 모든 걸 내려놓았을 때 그때/ 그대가 저 멀리 내게 미소 지으며 다가와/ 내 손을 잡아 줘/ 일이 있어도 그 어떤 모습이라 해도 알아볼 게/ 널 찾을게/ … 곁에 있을게 가까운 곳에 내가 언제나….

사순 시기가 시작될 무렵, 우연히 들려 온 노랫말, “너를 보는 게 지친 하루에 내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순간, 세상살이에 지쳐 지내는 우리, 우리보다 더 지치신 십자가의 예수님을 향한 고백 같았습니다. 예수님의 쓰라린 상처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혼탁한 세상을 향하여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라고 토로하시는 주님의 음성 같았습니다. 소소한 일상 안에서 주님을 기억하고 감사와 사랑과 믿음으로 채워 지내는 것이 예수님의 고통을 위로해 드린다는 걸 새삼 깨달은 기분이었습니다.

아, 우리 모두가 힘든 주님 사랑과 고뇌와 아픔에 공감하고 이해해 드릴 때, “나에게 좋은 일을 하였다”라는 귀한 칭찬을 들을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성심의 고통을 살펴 살아가는 우리 모습 모습이야말로 힘든 주님을 응원해드릴 수 있다는 진리를 유행가 가사를 통해서 다시 새긴 겁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을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을 향해서 목청을 높여 환호했지만 이내 돌변하는 모습에서 제 모습을 봅니다. 무엇보다 유다 이스카리옷의 야비함마저 낯설지 않아서, 간이 철렁합니다. 주님을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난 수석 사제들을 찾아가서 주님을 넘겨주겠다고 약속하는 그 초라한 모습도, 주님의 몸값을 흥정했던 비굴한 행색도, 그리고 겨우 ‘은 서른 닢’을 받아 주머니를 채웠던 모습마저도 흉보기가 어렵습니다. 양심에 찔리는 겁니다. 갖은 변덕으로 주님을 지치게 만드는 제 허접함과 마주한 것입니다.

‘은 서른 닢’은 한 세겔입니다. 당시 시세로 따져서 4데나리온의 가치를 지녔습니다.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으니 나흘 동안의 막노동의 대가로 얻을 수 있는 금액입니다.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믿음도 사랑도 손해를 보지 않는 선에서 계량하는 우리에게 말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봉사활동에서 마저 곧잘 마음에 생채기를 얻으니 말입니다. 지금. 주님을 믿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 주님의 값어치는 얼마입니까?

마음이 오락가락하고 행동이 우왕좌왕하는 우리가 주님을 지치게 합니다.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라고 하소연하게 만듭니다. 어찌하면 좋을까요?

주님이야말로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한 보물이라는 고백이 헛것임이 명백하니 말입니다. 주님을 향해서 바쳤던 ‘호산나’라는 환호가 겉치레에 불과하다는 게 들통이 났으니 말입니다. 주님께 힘이 되어 드리기는커녕 더더더 큰 짐으로 얹혀서 뻔뻔하게 살아가니 말입니다.

제발 유행가 가사만큼만이라도 우리의 기도가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사랑이 절절하면 좋겠습니다. 지치고 피곤한 삶이지만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보다 더 지쳐 계신 주님을 기억해드리면 좋겠습니다. 온 세상을 밝히는 화사한 햇살에서 주님 사랑을 느끼고 주님의 빛에 의지하여 살아갈 힘을 얻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이 두렵고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을 때, 곁에 계신 주님의 손을 잡고 힘을 내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온 힘을 쏟아 채워주고 계시니, 어떤 힘든 일도 막다른 길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믿음을 살아내면, 정말로 좋겠습니다. 우리의 굳센 믿음과 온전한 의탁으로 주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고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음을 깨달아 “너를 보는 게” 지친 하루에 큰 힘이 된다는 응답을 듣게 된다면 너무너무 좋겠습니다.

사순, 우리를 위해서 고통당하시는 주님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지친 하루를 봉헌하며 십자가 사랑으로 채워 힘을 냅시다. 복된 사순, 우리 모두가 주님께 “뛰어난 이름”으로 기억되는 은혜인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