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비움 다음 단계에 대해 / 이상협 신부

이승훈
입력일 2024-03-25 수정일 2024-03-26 발행일 2024-03-31 제 3386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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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성 증후군’에 대해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많은 물건을 구입하고 집 안에 쌓아두는 사람들. 무분별한 소비로 인한 과소유이든,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버리지 못한 채 과소유가 돼버린 경우이든 물건 정리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고백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채우는 것에는 더 이상 만족이 없지만, 비우는 것은 두렵다. 물건을 버릴 때 마치 나의 일부가 상실된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이 말에 공감했습니다.

우리는 채움에 익숙합니다. 꼭 물건이 아니라 할지라도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나를 채울 수 있는 많은 것들이 넘쳐납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여유가 없이 바쁘다”는 말도 그 방증입니다.

흔히 ‘비우는 행위’를 ‘소모하는 행위’와 동일시하기도 합니다. 배고픔 혹은 고된 노동으로 인한 체력소진처럼, 비움 뒤에 따라오는 공허함, 불안감 등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원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는 것들이 나를 채워 잠식해 간다면 그것만큼 두려운 것이 또 있을까요?

그 다큐멘터리의 결말 부분은 저장성 증후군 극복을 호소한 사람들이 주변의 도움으로 물건들을 버리고 정리해 빈 공간이 생긴 집을 보여줍니다. 저는 그 이후가 더 궁금했습니다. 소진되고 소모된 것들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채우고자 하는 욕구가 본능적으로 생깁니다.

중독적인 성향은 그 종류에 상관없이 그 맥을 같이 합니다. 만족을 위해 채우지만 결코 만족하지 못하므로 계속 반복해서 채워야 하는 것. 결국 채우고자 하는 본능은 변함없고 채울 소재만 바뀔 뿐인 것이지요.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하고 말한다.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루카 11,24-26, 마태오 12,43-45 참조)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나를 채우고 있는 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단순히 비우고 정리하는 것만으로는 궁극적인 문제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는 비움이 끝이 아닙니다. ‘자기 비허’는 곧 자기 자신을 비움으로써 소진되거나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하느님을 채움으로써 하느님 안에서 충만함을 누리는 것입니다. 내가 비우고 정리한 빈자리를 이제는 내가 아닌 하느님께서 채우도록 내어 맡기는 것이지요.

지난 사순 시기에 여러분은 많은 것을 끊거나 포기하거나 절제하셨을 것입니다. 비우고 정리한 그 자리를 그대로 유지할 자신이 있나요?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또 무언가로 채워야 할 허기가 느껴지신다면, 이번엔 하느님께 내 안을 채우시도록 맡겨드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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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이상협 그레고리오 신부(교구 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