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귀신의 집

이승훈
입력일 2024-07-01 수정일 2024-07-02 발행일 2024-07-07 제 340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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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에서 사목할 때에 종종 하는 일은 집 축복이다. 새로 집을 짓거나 수리해서 하는 집 축복은 열에 두세 번이고 대부분은 집에서 귀신이 보인다느니, 나쁜 꿈을 꾸거나, 무서운 것을 본다고 하면서 축복을 청한다. 진짜 헛것이 보이고, 집에서 안 좋은 기운을 느끼기도 하겠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느 날, 공소 미사를 마치고 신자들과 인사를 하고 있었다. 한 자매님이 자기 딸을 데리고 내 앞으로 왔다. 딸이 일도 잘 안 풀리고, 꿈자리도 나쁘고, 귀신을 자주 본다며 안수를 해달라고 한다. 처음 본 가족인데, 알고 보니 이 딸 때문에 모처럼 미사에 참례한 것이었다. 아무튼 안수를 해주고 그 가족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다음 주, 미사가 끝날 무렵에 지난주 안수를 부탁한 자매가 공소에 왔고, 공소회장에게 집 축복을 신청했다. 그 공소에는 담당 종신부제가 있었기에 공소회장은 종신부제에게 집 축복을 부탁했고, 부제는 그 자매를 따라 그녀의 집으로 갔다. 그렇게 또 한 주가 지나고, 미사 후에 같은 자매가 나타나서는 집 축복을 다시 청한다. 이미 부제가 축복해 준 것을 알았기 때문에, 축복을 왜 또 청하는지 의아했다.

공소회장이 난감해 하면서 전하는 말을 듣자니, 부제가 집 축복을 했는데 그 집 딸은 여전히 귀신을 보고 잠을 못 잔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부제가 신통하지 않으니 이번에는 신부가 와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내가 가고 나서도 귀신이 보이면 주교님한테 갈 거냐?”고 말이다. 공소회장이 웃는다. 그렇게 말했지만 결국 공소회장과 함께 그 집에 가봤다. 그리고는 알게 됐다. 왜 귀신을 계속 볼 수밖에 없는지.

다름이 아니라 그 집이 바로 귀신의 집이었다. 아니 오히려 귀신이 무서워 들어가 살 수 없는 집이었다. 집은 어둑어둑하고 청소도 안 되어 지저분하고 어디 하나 빈틈이 없을 만큼 수많은 물건들이 널브러진 엉망진창 그 자체였다. 만약 그곳에서 정상적인 삶, 건강한 삶을 산다면 정말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그 가족과 함께 집과 가정을 축복하는데 계속 분심이 들었다. 집은 어지럽고, 가족 중 누구 하나 기도문을 외울 수 없을 만큼 신앙생활은 하지 않았으면서 귀신을 쫓아달라며 여러 번 찾아오는 자매가 참으로 안타까웠다.

건강한 삶의 기본은 자신을 잘 돌보는 일이다. 더러운 곳에 더러운 것이 쌓이기 마련이고, 잘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불의가 자라며, 믿음이 없는 곳에서 악이 머리를 들어 올리게 된다. 그러니 더러운 것을 치우고, 빛을 밝히며, 늘 깨어 기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먹잇감을 찾아다니는 악마에게 쉽게 잡아먹힐 것이기 때문이다. 귀신이 보인다고 하기 전에, 나의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하기 전에, 먼저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한번 돌아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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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문석훈 베드로 신부(교구 비서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