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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 앞에서 침묵하십시오”…성 에디트 슈타인의 메시지

이주연
입력일 2024-11-01 수정일 2024-11-05 발행일 2024-11-10 제 3416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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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그리고 은총의 빛」
에디트 슈타인 지음 / 뱅상 오캉트 엮음 / 이연행 옮김 / 120쪽 / 1만3000원 / 가톨릭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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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디트 슈타인. CNS

현대인의 일상은 아침에 일어나 잠자리에 들 때까지 숨 가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해야 할 일들과 온갖 걱정거리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일과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다양한 문제에 직면해 피로에 지친다. 잠시 시간을 내어 묵상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처럼 느껴진다.

에디트 슈타인 성인(십자가의 성 데레사 베네딕타)은 이런 이들에게, 일상을 거룩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아주 잠깐이라도 침묵하며 마음 깊은 곳에 계신 하느님을 만나라’고 조언한다. 그렇게 했을 때 ‘그분께서 주시는 은총에 다가갈 수 있다’고 한다.

독일 유다인 집안에서 태어나 무신론자이자 철학자로 살다가 예수의 데레사 성녀 자서전을 읽고 가톨릭으로 개종했던 에디트 슈타인은 이후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했으나 게슈타포에 체포돼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스실에서 눈을 감았다.

성인은 이런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도 여러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이 책은 그 안에서 중요 내용을 발췌한 「내적 침묵으로 향하는 길」의 개정판이다. 진리 탐구와 이웃 사랑, 인간 존재의 의미, 교회 생활, 고통과 죽음 등에 대한 통찰을 포함해서 성인의 핵심 사상이 모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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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하루를 어떻게 주님의 은총 안에서 보낼 수 있는지를 성인의 독창적인 관점으로 묵상하도록 이끈다. 매일의 삶을 통해 자기 내면을 돌아보며 영적 성장의 지혜를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아닐 수 없다.

성인은 “깊은 영성, 겸손, 경청, 온유, 지혜 등의 덕목을 갖추려면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은총이 우리 안에 스며들어야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일은 은총을 향해 우리 자신을 활짝 여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의지를 완전히 내려놓고 오로지 하느님 뜻에 자신을 내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 영혼 전체가 하느님 손안에 받아들여질 준비가 필요하다. ‘자기 비움’과 ‘침묵’은 그렇기에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각 글은 짧고 간결하다. 쉽게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음에도 글 하나하나에 담긴 메시지에서 깊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사랑의 가장 내적인 본질은 ‘내어놓음’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사랑을 위해 창조하신 피조물들에게 당신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십니다. 기도는 인간의 영이 담당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과업입니다.”(48쪽)

“나는 아무 의심도 없이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분께서 내 곁에 계시다는 것을 압니다. 이 사실은 나에게 평온함과 힘을 줍니다.”(62쪽)

성인은 ‘영원하신 하느님과 관계를 맺으며 그 관계를 굳건히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좋은 방법’에 대해 ‘매일 묵상과 영적 독서를 하고, 미사에 참례하며 신실한 신앙생활을 이어 가는 것’이라고 한다. 모두에게 이 방법이 유익하지 않을 수 있지만, ‘중요한 점은 각자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 최대한 실천하는 것’이다.

글을 엮은 뱅상 오캉트는 “성인는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영성에 이르는 길을 알려준다”며 “그 길은 우리가 매일 ‘주님 안에서 사는 것’이며, 그분께서 우리 마음 안에 사시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